게임 개발 조직을 작고 유연하게 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세이버 인터랙티브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팀 윌리츠는 PC Gamer 인터뷰에서 한 게임에 수백 명이 매달리는 스튜디오는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를 이끈 알렉상드르 아망시오는 올해 1월 GamesIndustry.biz 인터뷰에서 "미래는 더 작은 팀에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의 '미메시스'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원문 인터뷰, 스팀 수치, 크래프톤 공시·보도자료로 하나씩 맞춰 보면 확인되는 부분과 아직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갈린다.

세이버 CCO "수백 명은 버티컬 슬라이스 이후에"

무대 위를 걸어가는 팀 윌리츠와 객석의 관객 실루엣
▲ 2019년 QuakeCon 기조연설 중인 팀 윌리츠. 이번 인터뷰와는 무관한 과거 행사 사진이다.

발언의 출처는 PC Gamer가 9월 5일(UTC) 공개한 팀 윌리츠 인터뷰다.

윌리츠는 세이버가 위기를 덜 겪은 이유로 자원을 여러 규모의 프로젝트에 분산한 것을 꼽았다.

"우리는 규모의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게임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나 '쥬라기 공원: 서바이벌' 같은 대작은 손이 많이 들어간다.

대신 리마스터와 소규모 게임이 이런 "큰 베팅"의 자금을 대는 구조라고 PC Gamer는 전했다.

윌리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게임에서든 일할 수 있고, 인력을 옮길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큰 스튜디오에서 나타나는 '사일로 문제'를 피한다."

이어 핵심 발언이 나온다. "한 게임에 몇백 명이 붙어 있는 스튜디오는 고전하게 될 것이다. 정말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게임이 버티컬 슬라이스에 도달하기 전에는 거기에 수백 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원문 표현은 'a couple hundred employees'다. 정확히는 '수백 명'이라기보다 '몇백 명 규모'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버티컬 슬라이스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과 실제 플레이 모습을 한 구간으로 완성해 방향성을 검증하는 단계를 뜻한다.

윌리츠는 록스타 같은 초대형 제작사가 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답했다.

한 게임에 5~6년씩 매이지 않고 여러 작품을 오가는 것이 직원들에게도 즐거움이라는 취지다.

스노우러너 — 한 사람의 실험에서 플레이어 2천만 명까지

진흙탕 길에 빠진 낡은 오프로드 트럭
▲ 스노우러너는 진흙과 눈길을 헤치는 오프로드 시뮬레이션이다.
눈 덮인 숲길과 송유관 아래를 지나는 군용 트럭
▲ 눈 덮인 숲길을 지나는 트럭. 지형 물리가 게임의 핵심 재미다.
마을 도로를 달리는 빨간 픽업트럭과 대형 화물트럭
▲ 마을 도로를 달리는 픽업트럭과 화물트럭. 차종과 지형이 다양하다.

영상: Saber Interactive 유튜브 채널

윌리츠가 소규모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로 든 게임이 '스노우러너'다.

PC Gamer는 이 게임이 "한 사람의 실험"에서 시작했다고 전했다.

스팀 정보로 기본 사실부터 확인해 둔다.

개발사는 세이버 인터랙티브, 배급은 포커스 엔터테인먼트다. 게임은 2020년 4월 28일 윈도우(PC)·PS4·Xbox One으로 먼저 나왔고, 스팀에는 2021년 5월 17일 출시됐다.

한국 스팀 가격은 13,920원(10월 19일 확인)이다.

스팀 평가는 전체 언어 기준 57,025건 가운데 긍정이 51,377건으로 약 90%, '매우 긍정적'이다.

플레이어 2천만 명이라는 수치는 세이버 인터랙티브가 올해 4월 공개한 것으로, 트랙시온(Traxion) 등이 4월 17일 전했다.

이 숫자는 판매량이 아니라 플레이어 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집계에 어떤 플랫폼이 포함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윌리츠의 '한 명의 실험'은 본인의 회고이고, 이후 정식 게임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몇 명이 투입됐는지는 인터뷰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소규모로 시작했다'와 '소규모로 끝냈다'는 다른 이야기다.

전 유비소프트 디렉터 아망시오 — "100명을 넘으면 관리하는 사람이 폭증한다"

알렉상드르 아망시오는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와 '어쌔신 크리드: 리벨레이션'의 디렉터를 맡았던 인물이다.

GamesIndustry.biz가 올해 1월 7일 공개한 인터뷰에서 그는 현재의 대형 게임 제작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 팀이 정말 필요하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근거로 든 것은 "사람이 만드는 무언가가 100명을 넘으면 역학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그는 "그 선을 넘으면 관리 인력과 게임을 만드는 인력의 비율이 폭발한다. 조율하는 사람들을 조율할 사람이 필요해진다"고 했다.

'이론'이라고 표현했듯 자체 측정치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업계 경험에서 나온 견해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투입해 해결하려는 AAA 스튜디오의 실수도 짚었다. 그는 이를 많은 스튜디오가 저질러 왔고,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고 표현했다.

"사람을 더하면 이미 효율적으로 일하던 사람들의 속도가 오히려 정체된다. 변수만 늘어 잡음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대안으로는 영화 업계처럼 핵심 팀을 두고 외주나 공동 개발로 필요한 곳을 보완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미래는 더 작은 팀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이 인터뷰의 요지다.

미메시스 — 4명의 프로토타입에서 200만 장까지

어두운 지하 터널에서 손전등을 든 캐릭터들이 괴물과 마주한 장면
▲ 지하 터널에서 마주친 괴물. 동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몬스터가 게임의 핵심 장치다.

영상: ReLU Games 유튜브 채널

국내 사례로 거론되는 '미메시스'는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가 만든 4인 협동 공포 게임이다.

동료의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 내는 몬스터가 팀 안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핵심이다.

디지털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이 게임은 2024년 10월 4명의 개발자가 만든 프로토타입에서 출발했다.

이후 20여 명 규모의 소수 정예가 얼리 액세스 출시까지 약 1년 만에 완성했다.

얼리 액세스는 2025년 10월 27일 시작됐다. 크래프톤은 출시 50일 만에 판매 100만 장을 넘겼다고 밝혔다.

올해 7월 13일에는 누적 200만 장 돌파를 발표했다. 6월 15일 대규모 업데이트로 괴물 행동, 진행 구조, 난이도를 손본 뒤 판매가 다시 늘었다는 설명이다.

조선비즈는 이를 '평균 20여 명'이라고 썼다. 개발 기간 동안 인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개발 과정은 더 흥미롭다. 렐루게임즈 관계자의 강연을 전한 게임뷰 보도에 따르면 미메시스의 전신은 '도플갱어'라는 프로토타입이었다.

플레이어 3명이 도플갱어 3마리와 맞서는 액션 게임이었는데, 재미를 검증하지 못해 접었다.

이후 몬스터 한 마리만 등장하는 작은 프로토타입으로 핵심 재미를 먼저 확인하고 나서야 본격 개발에 들어갔다고 한다.

같은 보도는 렐루게임즈가 사내에서 공개한 프로토타입 '시드'가 114개이고, 각각 AI 에이전트 전문가 1명이 5일 안에 만들었다고 전했다.

큰 팀을 붙이기 전에 작은 팀이 빠르게 '재미'부터 검증한다는 점에서 윌리츠가 말한 버티컬 슬라이스 이전 단계와 같은 맥락이다.

항목미메시스스노우러너
개발사 ReLU Games Saber Interactive
스팀 출시 2025년 10월 27일(얼리 액세스) 2021년 5월 17일
한국 스팀 가격 11,000원 13,920원
스팀 평가(전체 언어) 10,603건 중 긍정 약 84% 57,025건 중 긍정 약 90%
공개된 규모 지표 누적 판매 200만 장 돌파(7월 13일 발표) 플레이어 2천만 명(4월, 세이버 발표 보도)

▲ 스팀 appdetails·appreviews 기준, 2026년 10월 19일 확인. 판매량과 플레이어 수는 서로 다른 지표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크래프톤의 '신규 프로젝트 15개'

낙서가 가득한 골목에서 소파에 몸을 던진 캐릭터들
▲ 미메시스는 기괴한 설정과 달리 어딘가 능청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낙서 벽 앞에 서 있는 후드 차림 캐릭터 둘
▲ 정류장 같은 장소에서 팀원끼리 모이는 장면.

크래프톤은 올해 2월 9일 열린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신규 프로젝트 15개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2월 기준 운영 중인 제작 파이프라인은 총 26개다.

김창한 대표는 라인업을 넓혀도 전부 출시까지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단계별 관문마다 투자 확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조선비즈는 이를 '소수 정예 조직을 중심으로 한 착수'라고 표현했다. 컨퍼런스콜 보도에는 이런 규정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15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인원 구성이나 규모는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소수 정예'라는 규정은 보도의 해석이고, 크래프톤이 팀 규모를 수치로 밝힌 것은 아니다.

크래프톤의 올해 행보는 2분기 실적 기사와 '에이지 트위스터스' 기사에서 다룬 바 있다.

송재경 — AI 코딩 에이전트로 혼자 만든 MMO

조선비즈는 넥써쓰 송재경 고문이 AI 코딩 에이전트로 브라우저 MMORPG를 혼자 개발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깃허브에 공개된 오픈 MMORPG를 말한다.

조선비즈는 송 고문이 8월 해커톤에서 "리니지 초기 8명이 2년간 만든 분량을 혼자 8개월 만에 구현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수치는 행사를 다룬 다른 보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비즈 보도에 따른 내용으로 두고, 단정하지 않는다.

송재경은 '바람의나라'와 '리니지' 개발을 이끈 인물로, 현재 넥써쓰 고문으로 소개된다. 확인되는 행사는 8월 31일 서울에서 열린 '오픈AI 게임 빌더스 서울'이다. 송재경은 첫 키노트에서 코덱스를 활용한 MMORPG 개발 경험을 공유했다.

ZDNet코리아와 경향게임스는 그가 코딩 처리량이 기존보다 8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또 AI를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빨리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게임 안에서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참가자'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8배'는 보도로 확인된 숫자이고, '8명·2년·8개월'은 이와 별개의 조선비즈 인용이다. 둘을 섞어 읽지 않는 편이 좋다.

AI 활용 현황은 게임 개발자 AI 사용 조사 기사에서 정리했다.

여전히 남는 질문

이번 사례들은 방향이 같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윌리츠는 세이버 경영진이다. 자사 운영 방식을 설명하는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아망시오의 '100명' 기준은 이론이고 엄밀한 통계가 아니다.

셋째, 미메시스는 성공한 한 건이다. 같은 방식을 택했다가 결과가 나빴던 프로젝트는 눈에 덜 띈다.

넷째, 소규모 팀이 시작하더라도 성공한 뒤에는 인력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스노우러너가 그 점을 어떻게 겪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큰 조직의 비용 부담과 실패 위험을 줄이겠다는 업계 흐름은 분명하다. 감원 흐름은 게임업계 구조조정 전망 기사에서 볼 수 있다.

개발사들의 선택이 '작게 시작해서 검증하고 키운다'로 모인다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인원 수 자체보다 어느 단계에서 몇 명을 붙이느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