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서 AI 이야기는 대체로 두 갈래로 흐른다. 한쪽에서는 혁신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한다. 그 사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이 실제 숫자다. 개발자들은 정말 AI를 쓰고 있을까. 쓴다면 어디에 쓰고 있을까. 공개된 조사 결과를 모아 정리했다.
90%가 이미 쓰고 있다 — 조사 대상에 한국도 포함됐다
가장 규모가 큰 조사는 구글 클라우드가 해리스 폴에 의뢰해 진행한 것이다.
조사 기간은 2025년 6월 20일부터 7월 9일까지다. 대상은 게임 개발에 종사하는 성인 615명이다.
조사 국가는 다섯 곳이다. 미국, 한국,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다. 국내 개발 현장도 표본에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결과는 이렇다. 90%가 이미 AI를 업무 워크플로에 통합했다고 답했다.
97%는 생성형 AI가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고 봤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도입 여부를 논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2025년 8월 유럽 최대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인 devcom에서 발표됐다.
어디에 쓰나 — 1위는 그림이 아니라 플레이테스트
흥미로운 부분은 용도다. 대중적인 인식과 순위가 다르다.
가장 많이 꼽힌 용도는 플레이테스트와 밸런싱(47%)이었다.
그다음이 현지화(45%), 그리고 코드 생성(44%)이다.
즉 상위 세 항목 모두 완성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사람이 하기에 오래 걸리는 반복 작업 쪽이다.
AI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일러스트와 아트 생성은 이 순위표의 최상단에 있지 않다.
다른 응답에서도 같은 흐름이 읽힌다. 95%가 반복 작업 자동화에 AI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93%는 새 게임플레이 가능성 탐색, 92%는 새 장르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정리하면 현재 게임업계의 AI는 '그림을 그려주는 도구'보다 '개발 파이프라인을 압축하는 도구'에 가깝게 쓰이고 있다.
현지화가 2위라는 점은 국내 이용자에게도 체감되는 부분이다. 예전 같으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았을 소규모 게임이 한국어 자막을 달고 나오는 사례가 늘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스팀에서 드러나는 숫자 — AI 공시 게임 7,300개
설문이 아니라 실제 시장 데이터로 확인되는 수치도 있다.
밸브는 2024년부터 스팀에 출시되는 게임에 AI 생성 콘텐츠 사용 여부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결과 2026년 3월 기준 7,300개가 넘는 게임이 AI 라벨을 달았다.
이는 자진 신고 기준이라는 점에서 하한선에 가깝다. 실제 사용 비율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게임슬롭(Gameslop)'이라는 표현이다. AI로 급조한 저품질 게임이 마켓을 잠식한다는 비판을 담은 말이다.
즉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파이프라인 효율화로, 다른 쪽에서는 저품질 양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점이 지금 게임업계 AI 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개발자 절반은 "업계에 해롭다"고 답한다
도입률만 보면 AI는 이미 기본값이다. 그런데 인식 지표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GDC가 매년 진행하는 'State of the Game Industry' 2026 조사에서 게임업계 종사자의 52%가 생성형 AI를 업계에 해로운 존재로 꼽았다.
이 수치는 2024년 18%, 2025년 30%에서 가파르게 올랐다.
즉 쓰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좋게 보는 사람은 줄고 있다.
이 모순은 개발자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도구 도입은 회사가 결정하고, 그 결과인 인력 감축은 개인이 감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 상반기 게임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콘솔 플랫폼 업체들까지 스튜디오를 닫았다.
AI 도입과 인력 감축이 직접적인 인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다만 두 흐름이 같은 시기에 겹쳤다는 사실이 현장의 인식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사례 — 인조이의 AI NPC, 그리고 남는 질문
국내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례는 크래프톤의 '인조이(inZOI)'다.
이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CPC(Co-Playable Character)라는 AI NPC 기술이 적용됐다.
핵심은 NPC가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한다는 점이다. 정해진 대사와 동선을 반복하는 기존 NPC와 다른 접근이다.
이 기술은 엔비디아의 ACE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크래프톤과 엔비디아가 CES 2025에서 함께 공개했다.
시연에서 소개된 '스마트 조이(Smart Zoi)'는 성격과 감정을 갖고 도시 안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는 식으로 자기 일정을 짜고, 각 행동에 대해 AI가 생성한 이유를 붙인다.
잠자는 동안에는 그날의 행동을 되짚어 다음 날 행동을 다듬는 구조라고 설명됐다.
이런 방향은 앞서 본 조사 결과와 결이 다르다. 개발 효율화가 아니라 게임플레이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2026년 게임업계에서 AI NPC가 가장 뜨거운 주제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용 절감이 아니라 새로운 재미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정리하면 지금 게임업계의 AI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파이프라인 효율화다. 플레이테스트, 현지화, 코드 생성처럼 이미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둘째는 저품질 양산이다. 스팀 공시 게임 7,300개라는 숫자 뒤에 게임슬롭 논란이 붙어 있다.
셋째는 게임플레이 혁신이다. AI NPC처럼 아직 결과물이 충분히 나오지 않은 영역이다.
이 세 갈래 중 어느 쪽이 산업의 얼굴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도입 여부를 두고 논쟁할 단계는 지났다는 점만은 숫자가 분명히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