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게임의 출발점에 있던 개발자가 다시 코드를 잡았다. 그것도 혼자다. '바람의나라''리니지'를 만든 송재경 넥써쓰 고문이 1인 개발 MMORPG를 깃허브에 공개했다. 이름은 '오픈 MMORPG(Open MMORPG)'다. 그리고 이 게임의 설계에는 지금까지 없던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무엇을 공개했나 — 브라우저에서 도는 오픈소스 MMO

송 고문은 자신의 X 계정과 깃허브를 통해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형태부터 특이하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돌아가는 웹 기반 게임이다. 별도 클라이언트 설치가 필요 없다.

그리고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상용 MMORPG의 서버·클라이언트 구조가 통째로 열려 있는 셈이다.

규모도 습작 수준은 아니다. 맵 크기가 32km × 32km다.

여기에 낮과 밤이 순환하고, 건축과 하우징 요소가 들어간다.

아이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줍는 실시간 멀티플레이도 지원된다. MMORPG의 기본 문법이 대체로 구현돼 있다는 뜻이다.

1인 개발 프로젝트에서 이 정도 구성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서버를 유지해야 하는 MMO 장르에서는 더 그렇다.

핵심 설계 — AI에게 특권을 주지 않았다

곱슬머리에 안경을 쓴 남성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
▲ 송재경 넥써쓰 고문. '바람의나라'와 '리니지'를 만든 국내 온라인 게임 1세대 개발자다. 사진: daumdna (CC BY 2.0)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기술 규모가 아니라 설계 원칙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AI 에이전트와 인간 플레이어를 동등하게 대우한다.

둘은 같은 세계에 접속하고, 같은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육안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옆에서 함께 사냥하는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알 수 없는 구조다.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여기다. AI 에이전트에게 별도의 API를 제공하지 않는다.

보통 게임에 AI를 붙일 때는 AI 전용 통로를 만든다. 게임 상태를 정리된 형태로 넘겨주고, 명령도 함수 호출로 받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AI는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게임을 하게 된다. 화면을 볼 필요도, 조작 지연을 겪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오픈 MMORPG는 그 통로를 없앴다. AI도 사람과 같은 프로토콜로 접속해야 한다.

즉 'AI NPC를 게임에 넣는다'가 아니라 'AI를 플레이어로 받아들인다'에 가까운 접근이다. 최근 업계가 이야기하는 AI NPC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

어떻게 혼자 만들었나 — 바이브 코딩과 AI 에셋

1인 개발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도구의 변화가 있다.

송 고문은 이 게임을 '바이브 코딩(vibe coding)'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AI에게 의도를 설명하고 코드를 생성시키며 완성해 가는 개발 방식이다.

게임 에셋도 마찬가지다. AI로 생성한 리소스와 인터넷에서 구한 리소스를 섞어 채웠다.

MMO는 전통적으로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장르로 꼽혀 왔다. 서버, 클라이언트, 아트, 기획이 모두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장르를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개발 환경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다만 이 게임을 상업적 완성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에셋을 혼합해 채운 만큼 시각적 통일성이나 완성도는 상용 게임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무게는 결과물보다 실험의 성격에 있다.

실제로 공개 직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논의가 이어진 지점도 '얼마나 잘 만들었나'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같은 규칙으로 게임할 때 무슨 일이 생기나'였다.

왜 이 사람이 하면 다르게 읽히나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스 키 비주얼. 폐허가 된 거석 유적 사이로 붉은 망토의 주인공과 동료들이 초록빛 계곡을 바라보고 서 있다
▲ 송재경이 창업한 XL게임즈의 '아키에이지' IP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 XLGAMES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스에서 활을 든 캐릭터와 동료들이 숲속에서 불타는 거대한 골렘형 보스와 싸우는 장면
▲ '아키에이지'는 2013년 서비스를 시작한 국산 MMORPG다. 사진: XLGAMES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스에서 흰 옷의 캐릭터가 안개 낀 초원에서 푸르게 빛나는 유령 무리와 맞서는 장면
▲ MMORPG는 오랫동안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사진: XLGAMES

같은 프로젝트라도 누가 내놓느냐에 따라 읽히는 무게가 다르다.

송재경은 국내 온라인 게임 1세대 개발자다.

넥슨에서 '바람의나라'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서비스되고 있는 넥슨 최장수 게임이다.

이후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를 개발했다.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의 수익 모델 자체를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XL게임즈를 창업해 '아키에이지'를 내놨다. 이 IP는 지금도 후속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즉 그는 MMORPG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직접 만든 사람이다.

그런 개발자가 3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다시 MMO를 만들면서, 이번에는 혼자, 오픈소스로, AI를 플레이어로 두고 시작했다.

현재 그는 넥써쓰 고문으로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회사 사업이 아니라 개인 실험에 가깝다.

정리하면 이렇다. 규모로 보면 작은 프로젝트지만, 던지는 질문은 작지 않다.

게임 세계에 AI가 들어올 때 그들을 도구로 둘 것인가, 아니면 이용자로 둘 것인가. 이 프로젝트는 후자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