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 40여 년 역사에는 명작만큼이나 화려한 실패작도 많았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거나, 반대로 아이디어 자체가 애초에 잘못됐거나, 혹은 그냥 만든 사람들도 뭘 만드는지 몰랐던 것 같은 하드웨어들. 지금 돌아보면 웃음만 나오지만, 당시 이걸 정말로 돈 주고 개발하고 출시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흑역사 10선을 모아봤다.

10위. 아타리 재규어 (1993) — "세계 최초 64비트"라던 마케팅 사기

아타리 재규어 콘솔 본체
▲ "64비트"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32비트 두 개를 엮은 것에 가까웠던 아타리 재규어

아타리는 재규어를 "세계 최초의 64비트 콘솔"이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32비트 프로세서 두 개를 억지로 엮어 64비트라는 숫자만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소프트웨어 라인업도 빈약했고 개발 환경도 악명 높게 불편해, 서드파티 개발사들이 등을 돌리며 누적 판매량은 약 25만 대에 그쳤다. 결국 아타리는 재규어의 실패 이후 콘솔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9위. 노키아 엔게이지 (2003) — "타코폰"이라 불린 게임폰

노키아 엔게이지 게임폰 정면
▲ 통화하려면 옆면을 얼굴에 대야 했던 노키아 엔게이지

휴대폰과 휴대용 게임기를 결합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시대를 앞서갔지만, 실행이 문제였다. 통화를 하려면 기기 옆면을 얼굴에 대야 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고, 이 때문에 "타코폰(Taco Phone)"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게임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려면 배터리까지 분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노키아는 6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했지만 3년간 300만 대에도 못 미치는 성적으로 마감했다.

💡 10~9위 요약
· 아타리 재규어: "64비트" 마케팅 사기, 약 25만 대 판매
· 노키아 엔게이지: 통화하려면 옆면을 얼굴에 대야 하는 게임폰, 목표치의 절반도 못 채움

8위. 닌텐도 파워글러브 (1989) — 영화 속 명대사 "It's so bad"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된 닌텐도 파워글러브 컨트롤러
▲ 손 움직임으로 게임을 조작한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정확도가 문제였던 파워글러브

손에 끼고 움직임을 인식해 게임을 조작한다는 콘셉트는 30여 년 뒤 VR 컨트롤러로 부활할 만큼 선구적이었다. 문제는 1989년 기술로는 손가락 움직임과 회전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 사실상 조작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전용 소프트웨어도 단 2종('슈퍼 글러브 볼' 등)에 그쳤다. 영화 '더 위저드'에서 아역 배우가 내뱉은 "I love the Power Glove. It's so bad(파워글러브 정말 좋아해요. 진짜 구려요)"라는 대사는 이후 이 기기를 상징하는 밈으로 굳어졌다.

7위. 세가 32X (1994) — 자기 발등 찍은 자기잠식

메가드라이브 위에 얹힌 세가 32X 애드온
▲ 세가 새턴 출시를 코앞에 두고 나온 애드온, 세가 32X

세가는 차세대기 '세가 새턴' 출시를 코앞에 두고도, 기존 메가드라이브에 덧붙이는 애드온 '32X'를 별도로 내놓았다. 몇 달 뒤 나올 새턴과 32X 중 무엇을 사야 할지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전형적인 자기잠식 사례다. 결국 약 66만 대 판매에 그치며 1년여 만에 단종됐고, 세가 하드웨어 전략에 대한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6위. 오야 (2013) — 킥스타터 신화, 실물은 대참사

오야 콘솔 본체와 컨트롤러
▲ 킥스타터에서 목표액의 8배 넘게 모금했던 오야, 실물 완성도는 혹평받았다

"이제 콘솔도 오픈소스, 안드로이드 기반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킥스타터에서 목표액의 8배가 넘는 85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실제 제품은 컨트롤러 인식 불량, 부실한 게임 라인업, 불안정한 소프트웨어로 혹평을 받았고, 약 20만 대 판매에 그친 채 2015년 다른 회사에 인수되며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다. 대중의 기대와 실제 완성도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5위. 구글 스타디아 (2019) — 4년 만에 접은 클라우드 게임의 꿈

구글 스타디아 컨트롤러와 크롬캐스트 울트라
▲ 구글 스타디아 컨트롤러와 크롬캐스트 울트라. 서비스는 4년 만에 종료됐다

구글은 "하드웨어 없이 어떤 화면에서든 즉시 게임을"이라는 야심 찬 비전으로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스타디아를 선보였다. 하지만 초반부터 게임 수 부족과 네트워크 지연 문제에 시달렸고, 결국 2023년 1월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다. 더 뼈아팠던 것은 구독자들이 개별 구매한 게임의 소유권까지 함께 증발했다는 점으로, "클라우드로 산 게임은 결국 대여품일 뿐"이라는 경각심을 업계에 남긴 사례로 꼽힌다.

💡 7~5위 요약
· 세가 32X: 새턴 출시 직전 자기잠식, 약 66만 대
· 오야: 킥스타터 850만 달러+ 모금, 실물은 혹평 속 20만 대
· 구글 스타디아: 2019년 출시, 2023년 서비스 종료, 구매 게임 소유권까지 증발

4위. 닌텐도 위 유 (2012) — 이름 때문에 벌어진 대참사

게임패드와 본체가 나란히 놓인 닌텐도 위 유
▲ 완전히 새로운 콘솔이었지만, 많은 소비자가 '위'의 주변기기로 오해했던 위 유

위 유는 태블릿형 게임패드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았지만,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름'이었다. 전작 '위'와 이름이 너무 비슷했던 탓에, 많은 소비자가 이를 완전히 새로운 콘솔이 아니라 기존 위에 연결하는 주변기기 정도로 착각했다. 마케팅 역시 이 오해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고, 결국 누적 판매량은 약 1,356만 대로 전작 위(1억 대 이상)의 8분의 1 수준에 그쳤다.

3위. 닌텐도 버추얼보이 (1995) — 두통을 유발하는 VR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닌텐도 버추얼보이 본체와 삼각대, 컨트롤러
▲ 빨강과 검정 단색 화면만 지원했던 버추얼보이. 두통 유발로 악명 높았다

휴대용도, 거치형도 아닌 애매한 삼각대 거치식 VR기기였던 버추얼보이는 오직 빨간색과 검은색 단색 화면만 표시할 수 있었다. 장시간 사용 시 눈의 피로와 두통을 호소하는 사용자가 속출했고, 닌텐도 스스로도 "15세 미만은 사용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을 넣어야 했다. 결국 출시 1년도 안 돼 단종됐고, 누적 판매량은 약 77만 대로 닌텐도 독립 콘솔 중 최저 기록을 세웠다.

2위. 밸브 스팀머신 1세대 (2015) — 시대를 너무 앞서간, 혹은 준비가 덜 된

에일리언웨어 스팀머신과 스팀 컨트롤러
▲ 여러 제조사가 제각각 만들었던 스팀머신 1세대(에일리언웨어 모델과 스팀 컨트롤러)

밸브는 거실용 PC 게이밍 콘솔이라는 콘셉트로 스팀머신을 선보였지만, 직접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고 여러 제조사에 스펙을 맡기면서 성능과 가격이 제각각인 파편화된 라인업이 탄생했다. 결정적으로 당시 SteamOS에는 지금의 '프로톤(Proton)' 호환 레이어가 없어 윈도우용 게임 대부분을 실행할 수 없었다. 출시 7개월 만에 판매량이 50만 대에도 못 미치며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2018년 조용히 단종됐다. 흥미로운 점은 밸브가 이 실패를 발판 삼아 2021년 스팀덱을 성공시켰고, 2026년 다시 새로운 '스팀 머신'을 들고 거실 시장에 재도전하고 있다는 것 —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

1위. 필립스 CD-i (1991) — 만장일치 "역대 최악"

필립스가 닌텐도와의 CD 콘솔 공동 개발이 결렬된 뒤 홀로 내놓은 CD-i는, 얼떨결에 닌텐도 IP 사용권까지 넘겨받아 '젤다', '마리오' 스핀오프 게임들을 제작했다. 그러나 조작감이 조악한 리모컨형 컨트롤러와 형편없는 게임 완성도가 겹치며, 특히 실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젤다 CD-i' 시리즈는 어색한 연출과 대사로 지금까지도 인터넷 밈의 단골 소재로 소비되고 있다. 필립스는 CD-i 사업으로만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수의 레트로 게임 매체가 이 기기를 '역대 최악의 게임 하드웨어' 1위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4~1위 요약
· 위 유: '위'와 헷갈린 이름 탓에 참패, 약 1,356만 대
· 버추얼보이: 두통 유발 단색 VR, 약 77만 대, 1년 만에 단종
· 스팀머신 1세대: 프로톤 없던 시절의 헛발질, 7개월 50만 대 미만
· 필립스 CD-i: 약 10억 달러 손실, "역대 최악" 상시 후보 1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