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판타지7'로 전 세계 RPG 시장을 뒤흔든 직후였다. 그런 스퀘어가 다음 작품으로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횡스크롤 슈팅게임이었다. 회사의 정체성과도 같은 RPG를 벗어난 이 이색적인 도전이 바로 '아인핸더(Einhänder)'다.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정교한 무기 시스템과 어두운 SF 세계관, 그리고 시대를 앞선 3D 연출로 지금까지도 "PS1이 남긴 최고의 슈팅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레트로 게임 재조명 흐름 속에서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 작품을, 처음 듣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A부터 Z까지 정리했다.
① 왜 스퀘어가 슈팅게임을 만들었나 — 파이널판타지7 이후의 파격 행보
아인핸더의 연출을 맡은 것은 후지이 타츠오 감독이다. 그는 스퀘어 입사 전 코나미에서 '그라디우스 2', '제섹스' 같은 슈팅게임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던 인물로,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은 베테랑이었다. 스퀘어는 파이널판타지7 제작 과정에서 축적한 3D 렌더링 노하우를 이 신작에도 그대로 쏟아부었다. 게임 곳곳에는 독일어 용어와 그리스 신화, 성서에서 따온 이름이 등장하는데, 정작 타이틀명 '아인핸더'부터가 "한 손으로 다루는 검"을 뜻하는 독일어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주인공 기체가 가진 단 하나의 매니퓰레이터 암(무기를 붙잡는 팔)을 상징한다. 게임은 1997년 9월 도쿄 게임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같은 해 11월 20일 일본에서, 이듬해 5월 북미에서 정식 발매됐다.
· 개발·유통: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
· 디렉터: 후지이 타츠오 (전 코나미 그라디우스2 프로그래머)
· 일본 발매: 1997년 11월 20일 / 북미 발매: 1998년 5월
· 장르: 횡스크롤(2.5D) 슈팅
② 지구와 달의 전쟁 — 배신으로 이어지는 줄거리
배경은 먼 미래, 인류가 지구와 달의 식민지 '셀레네'로 나뉜 시점이다. 앞서 벌어진 '제1차 달 전쟁' 이후 지구는 독일어를 공용어로 쓰는 전체주의 군사국가로 변모했다. 시간이 흐른 뒤 셀레네는 부족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지구를 침공하고, 열세에 몰린 셀레네는 승부수로 '아인핸더 계획'을 가동한다. 정예 파일럿들을 태운 전투기를 지구로 보내는 사실상의 특공(가미카제) 작전이었다. 플레이어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파일럿이 되어 게임을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절반을 넘어서며 예상 밖의 전환을 맞는다. 결정적인 임무를 성공시킨 뒤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지휘부에 의문을 품은 주인공은 결국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 선택의 성패에 따라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엔딩으로 갈리는 구조다.
③ 세 대의 전투기 — 취향에 따라 갈리는 조작 방식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기본 기체는 세 종류다. 표준형 '엔디미온 FRS Mk.II'는 최대 세 개의 건포드(무기)를 동시에 소지하며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 초보자용으로 설계된 '엔디미온 FRS Mk.III'는 건포드를 한 번에 하나만 쓸 수 있지만, 대신 기본 기관총이 추가로 달려 있어 화력 공백이 적다. 상급자용 '아스트라이아 FGA Mk.I'는 기체 위아래에 건포드를 하나씩, 총 두 개를 동시에 장착해 굴리는 방식으로, 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화력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 여기에 게임을 클리어하면 해금되는 경찰용 호버크래프트 '샤베'와 탄약이 무제한인 '셀레네' 전투기까지 더해져 총 다섯 기종을 취향껏 골라 플레이할 수 있다.
④ 적의 무기를 빼앗아 싸운다 — 장르를 바꾼 건포드 시스템
아인핸더를 상징하는 시스템은 단연 '건포드(Gunpod)'다. 기체에 달린 매니퓰레이터 암으로 격추한 적이 떨어뜨린 무기를 그대로 붙잡아 자신의 화력으로 쓰는 방식으로, 당시 슈팅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인 발상이었다. 게임에는 총 8종의 기본 건포드와 4종의 히든 무기가 존재하며, 같은 무기라도 기체 위쪽에 달았을 때와 아래쪽에 달았을 때 성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미사일형 무기는 아래쪽에 달면 직선으로 강하게 날아가고, 위쪽에 달면 위력은 약해지는 대신 유도 성능이 붙는 식이다. 에너지 검으로 근접전을 벌이는 '블레이드', 전기 충격을 일으키는 '라이엇' 등 개성 강한 무기도 다양하다. 건포드는 총알을 대신 맞아주는 방패 역할도 겸하기 때문에, 탄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일종의 실드처럼 기능한다. 모든 건포드의 탄약이 바닥나면 매니퓰레이터 암으로 약한 근접 공격만 할 수 있는 무방비 상태가 되므로, 무기 관리 자체가 이 게임의 핵심 전략이었다.
⑤ PS1의 한계를 넘은 그래픽과 카메라 연출
아인핸더는 기체와 배경 모두를 완전한 3D로 구현했으며, 그 완성도는 동시대 슈팅게임과 비교해도 여전히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본적으로는 2D 평면 위에서 움직이는 횡스크롤 방식이지만, 보스전이나 극적인 순간에는 카메라가 회전하며 유사 3D 연출을 만들어낸다. 스테이지별 비주얼 콘셉트도 뚜렷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는 네온사인 가득한 거대 도시부터, 전쟁으로 폐허가 된 황량한 대지까지 폭넓은 톤을 오간다. 적 디자인도 생동감이 넘치는데, 잠수함형 보스 '살라만더'가 파이프에 팔을 걸고 원숭이처럼 매달려 움직이는 장면은 지금 봐도 인상적인 연출로 꼽힌다.
⑥ 후쿠이 켄이치로가 만든 테크노 사운드트랙
사운드트랙은 코나미 출신 작곡가 후쿠이 켄이치로가 맡았다. 댄스 지향적인 테크노를 기반으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특징으로, 1스테이지에는 오페라풍 보컬이, 보스전 테마 'Shudder'에는 랩이, 'Thermosphere'에는 피아노 선율이 녹아 있는 식이다. 당시 테크노 기반 게임 음악이 종종 빠지기 쉬운 단조로움의 함정을 피하면서도, 웅장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끝까지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임의 전체적인 하드코어한 톤과 맞물려, 지금도 별도로 찾아 듣는 팬이 있을 만큼 완성도 높은 스코어로 회자된다.
⑦ "Fallen?" — 절반을 넘어서야 드러나는 진짜 이야기
게임 시스템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이 게임의 서사 구조다. 초반에는 그저 명령에 따라 지구로 향하는 특공 임무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셔틀 요격 임무를 완수한 직후 이야기는 급격히 방향을 튼다. 이 지점에서 실패하면 그대로 배드 엔딩으로 끝나지만, 성공하면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게임이 계속된다. 이후 주인공은 지구군은 물론 자신을 배신한 셀레네군, 그리고 양측의 위성 '히페리온'까지 상대하는 진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 전쟁을 끝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 대가로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져 오직 참전 용사들의 기억 속에만 남는 결말을 맞는다. 짧은 플레이 타임 안에 이 정도의 반전과 여운을 담아낸 각본은, 슈팅게임이라는 장르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⑧ 평가와 오늘날의 유산 — 킹덤하츠3가 남긴 오마주
출시 당시 아인핸더는 메타크리틱 89점을 기록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IGN 9점, 일렉트로닉 게이밍 먼슬리 9.25점 등 주요 매체들은 하나같이 건포드 시스템의 독창성과 정교한 난이도 설계, 3D 그래픽의 완성도를 칭찬했다. 다만 짧은 플레이 타임과 2인 협동 플레이의 부재는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일본 발매 사흘 만에 5만 장이 팔렸고 1999년 2월까지 누적 10만 장을 넘겼지만, 파이널판타지7 같은 대박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별다른 후속 이식 없이 2008년 일본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 다운로드판으로 재출시된 것이 사실상 마지막 공식 재발매였고, 서구권에는 아예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재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작 '킹덤하츠3'다. 개발팀은 아인핸더의 주력기 '엔디미온'을 게임 내 검 소환 비행체의 디자인 모티프로 그대로 가져왔고, 특정 조건에서 보스 '슈바르츠가이스트'와 마주치면 아인핸더 원곡 테마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이스터에그까지 심어뒀다. 최근에도 인디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슈팅게임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아인핸더를 직접 언급하는 등, 발매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존재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 메타크리틱: 89점 (IGN 9점, EGM 9.25점)
· 초기 판매량: 일본 발매 3일 만에 5만 장, 1999년 2월까지 10만 장
· 재발매 이력: 2008년 일본 PSN 다운로드판이 사실상 마지막, 서구권 재발매 전무
· 오늘날의 유산: '킹덤하츠3'에 기체 디자인·보스 테마곡 오마주로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