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에서 신작 인디 게임 페이지를 열어보면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라는 태그가 거의 구분 없이 붙어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실제로 두 단어는 커뮤니티에서도, 심지어 개발사 공식 소개 문구에서도 뒤섞여 쓰인다. 하지만 두 장르는 뿌리부터 다르고, 그 차이를 알면 '왜 이 게임은 죽을 때마다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저 게임은 죽어도 조금씩 강해지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1980년 원조 'Rogue'부터 최근 인기작까지, 두 이름이 갈라지는 지점을 짚어봤다.

'로그(Rogue)'에서 시작된 이름

1987년작 넷핵(NetHack)의 ASCII 그래픽 화면
▲ 'Rogue'의 직계 후손 격인 '넷핵(NetHack)'. 문자(ASCII)만으로 던전과 몬스터를 표현하던 시절의 로그라이크 화면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NetHack GPL)

'로그라이크(Roguelike)'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로그(Rogue)를 닮은 게임'이라는 뜻이다. 1980년 미국 UC 버클리 학생들이 만든 던전 탐험 게임 'Rogue'가 그 시작점이다. 그래픽 카드조차 흔치 않던 시절이라 던전과 몬스터, 아이템은 모두 알파벳과 기호로 표현됐다. '@'는 플레이어, 'd'는 개, '$'는 금화 같은 식이다.

'Rogue'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래픽이 아니라 구조에 있었다. 던전 구조가 플레이할 때마다 무작위로 새로 생성됐고, 캐릭터가 죽으면 그걸로 끝—저장해둔 시점으로 되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이후 '넷핵(NetHack)', '앵밴드(Angband)' 같은 후속작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장르, '로그라이크'를 형성했다.

로그라이크의 3대 원칙 — 절차적 생성·영구 죽음·턴제

슬레이 더 스파이어 게임 스크린샷, 턴제 카드 전투 장면
▲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로그라이크의 턴제·절차적 생성 원칙을 카드 덱빌딩과 결합한 사례로 꼽힌다. 사진: MegaCrit

2008년 국제 로그라이크 개발 컨퍼런스에서는 이 장르를 좀 더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베를린 해석(Berlin Interpretation)'인데, 핵심 조건으로 절차적 생성(할 때마다 던전이 무작위로 바뀜), 영구 죽음(죽으면 저장 불러오기 없이 처음부터), 턴제 진행(실시간이 아니라 한 칸씩 움직이는 방식) 세 가지를 꼽았다.

여기에 격자(그리드) 기반 이동, 자원 관리, 한 번의 플레이가 짧게 끝나는 구조 등이 부가 조건으로 따라붙는다. 즉 전통적 의미의 '로그라이크'는 단순히 '죽으면 처음부터'인 게임이 아니라, 이 세 원칙을 동시에 충족하는 상당히 좁은 정의였다는 뜻이다.

'스펠렁키'가 쏘아올린 로그라이트

스펠렁키 2 게임 스크린샷, 동굴을 탐험하는 캐릭터
▲ '스펠렁키' 시리즈는 절차적 생성과 영구 죽음은 유지하면서도 실시간 액션 플랫포머로 만들어져, '로그라이트'라는 용어가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사진: Mossmouth

2008년 데릭 유가 만든 '스펠렁키'는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던전과 영구 죽음이라는 로그라이크의 핵심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턴제 대신 실시간 플랫포머 액션으로 풀어냈다. 베를린 해석의 조건 중 일부만 충족하는 셈인데, 이런 게임들을 기존 정의와 구분하기 위해 커뮤니티에서 '로그라이트(Roguelite)' 또는 '로그라이크-라이트(Roguelike-lite)'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그 이후에 나왔다. '리스크 오브 레인', '빈딩 오브 아이작', 이후 '데드셀즈' 같은 게임들이 메타 프로그레션(meta progression)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캐릭터는 죽어도 게임 전체는 완전히 초기화되지 않고, 죽는 과정에서 얻은 재화나 해금 요소가 다음 판에도 남아 캐릭터가 조금씩 더 강해진 상태로 재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 메타 프로그레션의 유무가 오늘날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를 가르는 가장 실질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표로 보는 핵심 차이

정리하면 두 장르의 차이는 결국 '죽음 이후 무엇이 남는가'로 귀결된다. 로그라이크는 죽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수한 도전'에 가깝고, 로그라이트는 죽음을 성장의 재료로 삼는 '누적되는 도전'에 가깝다.

기준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
죽음 이후완전히 처음부터 (성장 요소 없음)메타 프로그레션으로 조금씩 강해짐
진행 방식턴제(한 칸씩 이동)대부분 실시간 액션
던전 생성절차적 생성절차적 생성 (동일)
대표 사례넷핵, 앵밴드, 크림 오브 더 크롭헤이디스, 데드셀즈, 스펠렁키

헤이디스·데드셀즈처럼 경계에 걸친 게임들

데드셀즈 게임 스크린샷, 감옥 배경에서 전투하는 장면
▲ '데드셀즈'는 메타 프로그레션을 갖춘 대표적 로그라이트지만, 개발사조차 '로그라이크-배니아'라는 표현을 함께 쓴다. 사진: Motion Twin

그렇다면 '헤이디스'는 어느 쪽일까.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방, 죽으면 처음 지점(지하세계)으로 돌아가는 구조는 로그라이크에 가깝지만, 죽을 때마다 얻는 '냉혹의 방주' 자원으로 능력치를 영구히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명백히 로그라이트다. 개발사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조차 공식 소개에서 두 단어를 혼용한다.

'데드셀즈' 개발사 모션 트윈도 스스로를 '로그라이크-배니아(Roguelike-vania)'라 소개하고, '엔터 더 건전' 역시 로그라이크 총싸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도 실제로는 무기 해금 같은 메타 진행 요소를 갖고 있다. 결국 학술적으로는 베를린 해석의 조건 충족 여부로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 업계와 유저들 사이에서는 '메타 프로그레션이 있으면 로그라이트, 없으면 로그라이크'라는 느슨한 기준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굳어진 상태다. 스팀 태그가 둘을 딱히 구분하지 않고 섞어 붙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