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키보드를 고르다 보면 적축, 청축, 갈축 같은 이름부터 만난다. 여기에 요즘은 자석축이 붙었다. 그런데 이 색깔들은 규격이 아니다. 제조사가 붙인 관습적 이름에 가깝다. 축이 실제로 바꾸는 건 눌리는 느낌, 소리, 입력이 인식되는 지점 세 가지다.

축은 어떻게 작동하나

기계식 키보드 축의 네 가지 계열
▲ 축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그래픽: GamTrend

일반적인 기계식 축은 접점식이다.

키를 누르면 축 안의 금속 접점 두 개가 맞닿으면서 회로가 이어진다. 그 순간 입력으로 인식된다.

이 인식 지점을 액추에이션 포인트라고 부른다. 흔히 2mm 부근에 고정돼 있다.

키가 끝까지 내려가는 깊이는 대체로 4mm다.

2mm / 4mm는 업계 기준이 된 체리 MX 규격에서 왔다. 체리 MX 적축의 작동 압력은 45cN이다.

즉 절반쯤 눌렀을 때 이미 입력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끝까지 누를 필요가 없다.

축을 가르는 세 가지 성질은 여기서 파생된다. 누르는 힘(키압), 중간에 걸림이 있는지, 소리가 나는지다.

리니어·택타일·클릭 — 세 계열

적축·갈축·청축·흑축의 성격 비교
▲ 색깔은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성격의 큰 갈래는 공유한다. 그래픽: GamTrend
키보드에 장착된 체리 MX 적축 근접 사진
▲ 키보드에 실장된 체리 MX 적축. 사진: Multicherry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리니어는 걸림 없이 일직선으로 눌린다. 대표가 적축이다.

가볍고 저항이 없어 연타와 빠른 입력에 유리하다. 게임용 기본값처럼 쓰인다.

단점은 어디서 입력됐는지 손으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타이핑에서 오타가 늘 수 있다.

흑축도 리니어인데 키압이 무겁다. 오타는 줄지만 장시간 타이핑에서는 피로하다.

택타일은 중간에 걸리는 구분감이 있다. 대표는 갈축이다.

입력된 순간이 손끝에 전달돼 게임과 문서 작업을 겸할 때 무난하다. 흔히 절충안으로 불린다.

클릭은 구분감에 소리까지 더한 방식이다. 청축이다.

타건감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최선이지만, 사무실이나 합사 환경, 마이크를 켜는 방송에는 부적합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같은 '적축'이라도 제조사와 세대에 따라 키압과 행정이 다르다.

체리 MX 적축과 다른 회사의 적축이 같은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색만 보고 고르면 어긋날 수 있다.

자석축 — 접점 없이 깊이를 읽는다

홀 이펙트 자석축의 구조와 래피드 트리거 동작 방식
▲ 고정된 지점 대신 눌린 깊이 자체를 실시간으로 읽는다. 그래픽: GamTrend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 자석축이다.

정식 명칭은 홀 이펙트(Hall Effect) 방식이다.

원리가 다르다. 금속 접점이 닿는 게 아니라, 자기장의 변화로 키가 얼마나 눌렸는지를 읽는다.

물리적으로 닿는 부분이 없으니 접점 마모가 없다. 수명 면에서 유리하다.

더 중요한 건 깊이를 실시간으로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액추에이션 지점을 이용자가 직접 정할 수 있다. 제품에 따라 0.1mm 단위로 조절된다.

고정 2mm와 비교하면 훨씬 세밀한 조정이다.

여기서 나오는 기능이 래피드 트리거다.

일반 축은 한 번 누른 뒤 정해진 리셋 지점까지 올라와야 다시 입력된다.

래피드 트리거는 키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즉시 리셋된다. 조금만 떼도 바로 다시 눌린다.

좌우 이동을 빠르게 번갈아 입력하는 상황에서 차이가 크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발로란트, osu! 같은 게임에서 이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한계가 있다. 자석축은 리니어 계열만 존재한다.

구조상 택타일이나 클릭 감각을 만들 수 없다. 타건감을 중시한다면 접점식 쪽이 여전히 선택지가 넓다.

국내에서도 자석축 제품이 빠르게 늘었다. MCHOSE 에이스 68처럼 5만 원대 자석축도 나와 있다.

조절 가능한 축은 자석축만이 아니다

홀 이펙트 자석축과 아날로그 광축의 감지 방식·조절 기능 비교
▲ 감지 수단만 다를 뿐, 할 수 있는 일은 상당 부분 겹친다. 그래픽: GamTrend

광축이라는 표기도 자주 보인다.

적외선을 가리는 정도로 입력을 인식한다. 접점이 닿지 않는다는 점은 자석축과 같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긴다. 광축은 단순히 '빠른 축'이고 조절 기능은 자석축 전용이라는 인식이다.

사실이 아니다.

아날로그 광축은 액추에이션을 조절한다. 레이저의 아날로그 광축 2세대는 전체 행정 0.1mm부터 4.0mm까지 조절되고, 0.1mm 단위 래피드 트리거도 지원한다.

기능 범위는 자석축과 상당 부분 겹친다.

차이는 감지 수단에서 온다.

레이저는 광축 쪽 근거로 공장 캘리브레이션을 든다. 스위치마다 적외선 밝기를 조정해 행정 전 구간의 값 편차를 줄인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는 환경 영향이다. 자석은 온도나 주변 자기장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빛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건 제조사의 주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사용에서 체감되는 차이인지는 별개다.

현실적인 결론은 이렇다. '자석축이냐 광축이냐'보다 '래피드 트리거와 액추에이션 조절을 지원하느냐'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제품 페이지에서 이 두 기능의 지원 여부와 조절 단위를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

축 말고도 소리와 느낌을 바꾸는 것들

같은 축을 써도 키보드마다 소리가 다르다. 축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테빌라이저는 스페이스바나 엔터 같은 긴 키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여기가 부실하면 특정 키에서만 잡소리가 난다.

내부 흡음재가 들어가면 통울림이 줄어 소리가 차분해진다.

윤활 여부도 크다. 공장 윤활이 된 축은 사각거림이 적다.

키캡 재질도 소리에 영향을 준다. PBT는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낮은 소리, ABS는 가볍고 높은 소리를 내는 편이다.

그래서 '적축이면 조용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청축보다 조용한 건 맞지만, 키보드 구조에 따라 충분히 시끄러울 수 있다.

저소음이 필요하다면 저소음 전용 축이 따로 있다. 축 이름에 '사일런트'가 붙는다.

핫스왑이면 나중에 바꿀 수 있다

축 선택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하나 있다.

핫스왑 지원 키보드를 고르는 것이다.

핫스왑은 납땜 없이 축만 뽑아 갈아 끼울 수 있는 구조다.

적축을 써보고 안 맞으면 갈축으로 바꾸면 된다. 키보드를 다시 살 필요가 없다.

축 가격은 개당 수백 원대부터 시작한다. 풀배열을 전부 바꿔도 키보드 값보다 훨씬 싸다.

처음 기계식을 산다면 핫스왑 지원 여부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권한다.

가성비 구간 제품 정리에서도 핫스왑 지원은 주요 비교 항목이었다.

다만 자석축과 접점식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자석축 키보드에 적축을 끼울 수는 없다.

용도별로 정리하면

용도별 키보드 축 선택 기준 정리
▲ 무엇을 주로 하는지부터 정하면 선택지가 좁아진다. 그래픽: GamTrend

경쟁 FPS 위주라면 자석축이나 아날로그 광축이 유리하다. 래피드 트리거와 액추에이션 조절이 실제로 입력 속도를 바꾼다.

게임과 문서 작업을 반반으로 한다면 갈축이나 가벼운 리니어가 무난하다.

타건감이 우선이면 청축이다. 다만 주변 환경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무실이나 가족과 함께 쓰는 공간이라면 저소음축, 또는 흡음재가 들어간 적축 제품이 낫다.

나중에 바꿀 여지를 남기고 싶다면 핫스왑 지원 모델을 고르면 된다.

폼팩터도 함께 정해두면 좋다. 텐키가 필요 없다면 TKL이나 75% 배열이 책상을 넓게 쓴다.

96% 배열처럼 방향키와 텐키를 압축해 넣은 제품도 절충안으로 쓸 만하다.

마지막으로, 축은 글로 읽는 것보다 눌러보는 게 빠르다. 축 견본(스위치 테스터)은 만 원 안팎이면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