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게임업계가 마주한 질문이 하나 있다. 게임 안에 AI로 만든 배경이나 대사가 들어갔다면, 그 사실을 어디에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가다. 8월 18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게임산업 포럼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결론부터 보면 두 가지다. 첫째, 게임사가 반드시 표시 의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게임 콘텐츠 전체에 완벽한 워터마크를 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8월 18일 포럼 — 무엇을 논의했나
법무법인 화우가 8월 18일 서울 강남구 화우연수원에서 제14회 게임산업 포럼을 열었다.
이번 회차의 주제는 'AI 기본법과 AI 생성물 표시 의무'였다.
AI 기본법은 2026년 1월 22일 시행됐다. 이후 시행령 개정을 거쳐 7월 21일부터 'AI 제품·서비스 확인제'가 새로 도입됐다.
법의 골자는 생성형 AI나 고영향 AI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그 사실을 이용자에게 미리 알리고, 결과물에 AI로 생성됐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시 방법으로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와 워터마크 같은 기계 판독 방식이 함께 인정된다.
문제는 이 조항을 게임에 그대로 대입하면 곧바로 벽에 부딪힌다는 데 있다. 게임은 수많은 리소스가 실시간으로 합쳐져 화면을 만들어 내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은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실무 관점에서 짚는 자리였다.
게임사는 표시 의무자인가 — 1단계와 2단계의 구분
가장 실무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누가 표시 의무를 지느냐'다.
포럼에서 정호선 변호사는 AI 기본법이 두 범주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1단계는 AI를 개발하는 사업자다. 2단계는 그 AI를 가져다 서비스에 활용하는 사업자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정 변호사는 "게임사가 게임 아트나 퀘스트 텍스트 같은 내부 개발 업무에만 상용 AI 도구를 사용한다면, 그 회사는 직접적인 표시 의무자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AI를 '도구'로 쓴 것과 AI를 '서비스'로 제공한 것은 법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발 과정에서 AI로 콘셉트 아트를 뽑아 참고했다면 전자에 가깝다. 반면 게임 안에서 이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AI가 실시간으로 대사를 생성해 주는 기능을 넣었다면 후자에 해당한다.
김종일 센터장도 같은 지점을 강조했다. "게임사는 AI를 단순한 내부 생산성 도구로 쓰는지, 아니면 이용자 대상 서비스로 제공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하고 그에 맞춰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실시간 워터마크는 거의 불가능하다"
두 번째 쟁점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다.
정호선 변호사는 이 부분을 단호하게 정리했다. "수많은 에셋이 하나로 합쳐지는 게임 콘텐츠 전체에 완벽한 실시간 워터마크를 적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한 화면에는 배경, 캐릭터 모델, 이펙트, UI, 텍스트가 동시에 얹힌다.
이 중 일부만 AI로 만들어졌을 때, 화면 어느 지점에 무엇을 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찍은 스크린샷에도 워터마크가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포럼에서 제시된 현실적 대안은 두 가지의 조합이다.
먼저 포괄적 사전 고지다. 로딩 화면이나 이용약관에 "이 게임은 일부 배경과 NPC에 AI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같은 문구를 명시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내부 기록 유지다. 어떤 도구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AI 사용 로그를 남겨 두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이 두 가지를 갖추면 "법적으로 충분한 보호를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해외 기업에는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
국내 업체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AI 기본법은 해외 기업에도 의무를 부과한다.
국내에서 발생한 AI 서비스 매출이 100억 원을 넘는 외국 기업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여기에 조건이 붙는다. 그 대리인은 해당 AI의 기술적 구조를 이해하고, 정부의 문의에 직접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려 두는 대리인으로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해외 게임사나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실질적인 부담이 될 수 있는 조항이다.
국내 이용자를 상대로 AI 기능을 붙인 게임을 서비스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렇다.
계도 기간과 남은 변수들
당장 과태료가 쏟아지는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법 시행 초기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1년 이상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계도만 하는 기간을 운영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계도 기간이 끝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금 체계를 잡아 두지 않으면 그때 가서 급하게 대응해야 한다.
변수는 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칭 'AI 콘텐츠 진흥법' 초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AI 기본법이 전 산업을 대상으로 한 일반법이라면, 콘텐츠 분야에 특화된 규정이 별도로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기준이 한 번 더 바뀔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이용자 쪽 정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스팀에서는 AI 사용을 표시한 게임이 7,300개를 넘어섰고, 그 과정에서 '게임슬롭'이라는 비하 표현이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최근 재출시된 게임이 AI 리소스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사례가 있다.
즉 표시 의무는 법적 문제인 동시에 평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밝히고 어떻게 설명할지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국면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