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시스템 쇼크', '씨프'를 세상에 내놓은 워렌 스펙터가 게임 개발에서 손을 뗀다. 그는 8월 17일 링크드인에 직접 글을 올려 은퇴 사실을 알렸다. 1982년 업계에 발을 들인 뒤 44년, 정식 타이틀 17편과 확장팩 9종을 남긴 끝이다. 이유로는 나이와 건강을 먼저 꼽았지만, 글 곳곳에는 달라진 업계에 대한 피로감도 함께 묻어 있었다.
"은퇴한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펙터가 링크드인에 올린 글의 첫 문장은 이랬다. "나는 게임 개발에서 은퇴한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곧바로 단서가 붙는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고 마음을 바꿨다. 하지만 이번엔 꽤 진심인 것 같다."
은퇴를 결심한 첫 번째 이유로는 나이와 건강을 들었다. 그는 오는 10월 71세가 된다.
다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게임 사업이 변했고, 나에게는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적었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게다가 자기 몫의 햇빛을 받을 자격이 있는 새로운 세대의 개발자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아직 만들고 싶은 게임이 세 편 있다고 했다. 하나는 규모가 큰 작품, 하나는 작은 작품,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도 개념을 잡기 까다롭다고 표현한 기획이다.
그럼에도 지난 44년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무엇 하나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책을 쓰고, 밀린 독서를 하고, 강연과 컨설팅을 하겠다고 밝혔다. 손을 놓았던 피아노도 다시 잡을 생각이라고 했다.
테이블 위의 주사위에서 시작한 경력
스펙터의 출발점은 비디오 게임이 아니었다. 1983년 테이블톱 게임 회사 스티브 잭슨 게임즈에 편집자로 들어간 것이 첫 직장이다.
이후 던전 앤 드래곤으로 유명한 TSR로 자리를 옮겨 여기서도 종이 위의 게임을 다뤘다. 규칙을 설계하고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쥐여 주는 훈련을 이 시기에 쌓았다.
전환점은 1989년이었다. 텍사스 오스틴의 오리진 시스템즈에 합류하면서 비디오 게임 개발로 넘어왔다.
오리진에서 그는 '울티마 6: 거짓 예언자'와 '윙 커맨더' 시리즈 같은 간판 프로젝트를 맡았다. 당시 PC 게임 시장을 이끌던 두 축이다.
그리고 1992년, 이후 30년을 규정할 작품이 나왔다. 오리진 산하 블루 스카이 프로덕션이 만든 '울티마 언더월드: 스티지안 어비스'다.
이 게임은 던전을 3D 공간으로 구현하고, 그 안의 물건과 지형을 플레이어가 실제로 만지고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대신 공간을 이해하고 스스로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2년 뒤 같은 팀이 '시스템 쇼크'를 내놨다. 우주 정거장을 장악한 인공지능 쇼단(SHODAN)과 맞서는 이 작품은 훗날 '바이오쇼크'와 '데드 스페이스'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 됐다.
1998년에는 루킹 글래스 스튜디오의 '씨프: 더 다크 프로젝트'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적을 죽이는 대신 그림자에 숨고 소리를 죽이는 플레이를 전면에 내세운, 스텔스 장르의 원형에 해당하는 게임이다.
2000년 '데우스 엑스' —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
스펙터는 1997년 이온 스톰 오스틴 스튜디오를 맡았다. 이곳에서 3년을 들여 완성한 것이 2000년작 '데우스 엑스'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나노 기술로 강화된 요원 JC 덴튼이 전염병과 음모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다만 이 게임이 기억되는 이유는 줄거리가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를 게임이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긴 문 하나를 두고 플레이어는 여러 답을 낼 수 있었다.
총으로 경비를 제압하고 정면 돌파할 수도 있고, 보안 단말을 해킹해 문을 열 수도 있다. 환풍구를 뜯어 우회하거나, 상자를 쌓아 창문으로 넘어가는 방법도 통했다.
중요한 건 개발진이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일일이 손으로 깔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킹과 물리, 인공지능이 각자의 규칙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두고, 그 규칙들이 부딪히는 자리에서 나오는 결과를 플레이어에게 맡겼다.
이 설계 철학은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스펙터 본인이 만든 용어는 아니지만, 이 장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그가 불리게 된 계기가 바로 '데우스 엑스'였다.
이 계보에서 나온 게임들의 목록만 봐도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바이오쇼크', '디스아너드', '프레이'(2017), '위쳐'와 '사이버펑크 2077'의 접근 방식 일부까지 이 방향을 참고했다.
넓게 보면 오늘날 오픈월드 게임이 자랑하는 '플레이어 자유도'라는 개념 자체가 이 시기에 다듬어진 것이다.
'데우스 엑스'는 그해 대부분의 올해의 게임 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역대 최고의 PC 게임을 꼽는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후속작 '데우스 엑스: 인비저블 워'(2003)와 '씨프: 데들리 섀도우'(2004)까지 이온 스톰 오스틴에서 나왔다. 두 작품 모두 전작만큼의 평가는 받지 못했다.
디즈니로 간 개발자 — 정션 포인트와 '에픽 미키'
2004년 이온 스톰을 떠난 스펙터는 이듬해 자신의 스튜디오 정션 포인트를 세웠다. 2007년 디즈니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는 디즈니 소속 개발자가 됐다.
여기서 나온 결과물이 2010년 Wii로 출시된 '에픽 미키'다.
설정부터가 특이했다. 디즈니가 만들었다가 잊어버린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폐기된 세계'가 무대였고, 미키 마우스가 마법 붓을 들고 이곳에 떨어진다.
붓으로 페인트를 칠하면 사라진 것이 되살아나고, 시너를 뿌리면 있던 것이 지워진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지울지에 따라 세계와 등장인물의 태도가 달라지는 구조였다.
이머시브 심의 설계 원리를 가족용 플랫폼 게임에 옮겨 놓은 시도였던 셈이다. 실험은 흥미로웠지만 조작감과 카메라 문제로 평가는 갈렸다.
2012년 '에픽 미키 2: 두 개의 힘'이 나왔으나 판매가 부진했고, 이듬해 디즈니는 정션 포인트를 폐쇄했다.
이 시기 전후로 그가 쌓은 공적은 업계도 인정했다. 2012년 게임 개발자 초이스 어워드에서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받았다.
이후 그는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게임 개발 아카데미를 이끌며 교육 쪽에 시간을 쏟았다. 개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2015년 어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하면서다.
마지막 작품이 된 '씩 애즈 시브즈'
스펙터의 마지막 작품은 올해 5월 20일 출시된 '씩 애즈 시브즈(Thick as Thieves)'다. 어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가 만들고 메가비트 퍼블리싱이 유통했다.
'씨프'의 정신적 후속작을 표방한 멀티플레이 잠입 절도 게임으로, PC와 PS5, 엑스박스 시리즈로 동시에 나왔다.
출시 조건부터 이례적이었다. 정가가 5달러였고, 싱글 캠페인 분량은 약 4시간으로 안내됐다.
개발 과정에서 방향도 크게 흔들렸다. 처음에는 플레이어끼리 경쟁하는 PvPvE 구조로 기획됐다가, 개발 후반에 협동 중심의 PvE로 선회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평가는 미지근했고, 판매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출시 한 달 뒤 어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스튜디오 규모는 10명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7월 23일, 스튜디오는 스팀 공지를 통해 '씩 애즈 시브즈'의 지원 종료를 알렸다. 출시 두 달 만이었다. 신규 콘텐츠 업데이트는 더 이상 없으며, 멀티플레이는 개인 간 직접 연결 방식으로 유지를 시도하고 싱글 플레이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스튜디오 측은 짧은 문장으로 심경을 대신했다. "게임 업계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때는 더없이 즐겁고, 또 어떤 때는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다."
이 게임이 결과적으로 44년 경력의 마지막 줄이 됐다. 은퇴 발표 한 달여 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그가 말한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문장의 무게가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12명에서 800명까지, 그가 남긴 것
스펙터는 은퇴 글에서 자신의 경력을 숫자로 정리했다. 정식 타이틀 17편, 확장팩 약 9종이다.
함께 일한 팀의 규모도 언급했다. 열두 명짜리 소규모 팀부터 800명이 붙는 대형 프로젝트까지 이끌어 봤다고 했다.
조직 형태도 다양했다. 거대 기업 안에서도, 갓 출발한 스타트업에서도 개발을 지휘했다.
그가 남긴 것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개발자가 정답을 하나 정해 두고 플레이어를 그리로 몰아가는 대신, 규칙이 돌아가는 세계를 만들어 두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이것이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들어 둔 길로 플레이어가 가지 않으면 개발 비용이 그대로 낭비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방향을 밀어붙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자유도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을 만들었다.
다만 그가 세운 장르의 현재 상황은 밝지 않다. '데우스 엑스' 시리즈는 2016년 '맨카인드 디바이디드' 이후 신작이 없고, 어더사이드가 맡았던 '시스템 쇼크 3'는 결국 그의 손을 떠났다.
정작 그 계보를 잇겠다고 나선 마지막 작품마저 두 달 만에 지원이 끊겼다. 은퇴 발표에 업계 안팎의 반응이 유독 무거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완전히 문을 닫지는 않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열어 두는 표현을 글 말미에 남겨 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책상 앞이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오랫동안 미뤄 둔 피아노를 다시 치겠다는 것이 그가 밝힌 다음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