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가격이 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폭등의 주인공이 최상위 모델이 아니다. 8월 미국 시장 기준 RTX 5060 Ti 16GB 모델의 중앙값이 804.99달러를 기록했다. 6월의 569.99달러에서 두 달 만에 39% 오른 값이다. 같은 기간 RTX 5080은 3%, RTX 5070 Ti는 아예 변동이 없었다. 중급기와 보급기가 상위 모델보다 훨씬 큰 타격을 받은 셈이다.

6월과 8월, 무엇이 얼마나 올랐나

시장 조사 자료에 따르면 RTX 50 시리즈 전 라인업의 8월 중앙값은 다음과 같이 움직였다.

가장 크게 오른 것은 RTX 5060 Ti 16GB다. 569.99달러에서 804.99달러로 39% 상승했다.

그 뒤를 RTX 5070이 이었다. 659.99달러에서 899.99달러로 36% 올랐다.

RTX 5060도 369.99달러에서 469.99달러로 27% 뛰었다.

반면 상위 모델의 움직임은 조용했다. RTX 5070 Ti는 1,099.99달러로 두 달간 변동이 없었다.

RTX 5080은 1,461.99달러에서 1,499.99달러로 3% 오르는 데 그쳤다. RTX 5090은 4,299.99달러에서 4,699.99달러로 9% 상승했다.

가장 아래인 RTX 5050은 299.99달러에서 314.99달러로 5% 올랐다.

즉 인상률 순위는 5060 Ti 16GB → 5070 → 5060 순이다. 가격대로는 중간 구간이 정확히 가장 크게 흔들렸다.

8GB는 13%, 16GB는 39% — 범인은 VRAM이다

전시대에 놓인 SK하이닉스 DDR5 메모리 모듈 제품
▲ AI 수요가 촉발한 메모리 가격 상승이 그래픽카드 실거래가로 전이되고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이번 인상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비교가 있다. 같은 RTX 5060 Ti의 두 가지 버전이다.

8GB 모델은 469.99달러에서 529.99달러로 13% 올랐다. 반면 16GB 모델은 같은 기간 39% 올랐다.

칩은 같고 VRAM 용량만 다른 두 제품의 인상률이 세 배 차이로 벌어진 것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AI 수요가 끌어올린 메모리 가격이다.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발하면서 메모리 제조사들이 생산 능력을 그쪽으로 돌렸고, 그 여파가 소비자용 그래픽카드에 쓰이는 메모리까지 밀어 올렸다.

메모리를 많이 쓰는 제품일수록 원가 압박을 크게 받는 구조다. 16GB 모델의 인상폭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상위 모델은 왜 덜 올랐을까. 이미 몇 차례 인상을 거치며 가격이 충분히 높아진 상태여서, 추가 인상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시가와 비교하면 88% 위

책상 위에 놓인 소형 폼팩터 PC 안에 장착된 지포스 RTX 5070 파운더스 에디션 그래픽카드
▲ 중급기 가격이 오르면서 보급형 게이밍 PC 구성 비용 전체가 함께 올랐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두 달 사이의 변동만 보면 체감이 덜할 수 있다. 출시 당시 권장가와 비교하면 격차가 훨씬 뚜렷해진다.

RTX 5060 Ti 16GB의 출시 권장가는 429달러였다. 현재 중앙값 804.99달러는 여기서 약 88% 높은 값이다.

출시가로 사려던 사람이 지금 사면 거의 두 배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최상위 모델은 격차가 더 크다. RTX 5090의 출시 권장가는 1,999달러였고, 현재 중앙값은 4,699.99달러다. 약 135% 높은 수준이다.

권장가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흐름은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영국 시장에서도 RTX 5060 Ti 16GB가 1월 대비 약 2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시장 역시 같은 공급망을 공유하는 만큼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가장 곤란해진 것은 중간 예산 이용자

은색 금속 하우징의 구형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70 파운더스 에디션 그래픽카드
▲ 한때 중급기는 '적당한 값에 충분한 성능'을 담당하는 자리였다.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번 인상 구조가 만든 결과는 분명하다. 중간 예산을 잡고 있던 이용자가 가장 크게 손해를 봤다.

예산 80만 원 안팎으로 1440p 게이밍용 그래픽카드를 고르던 구간이 통째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RTX 5060 Ti의 16GB 모델은 최근 몇 년간 '오래 쓸 수 있는 합리적 선택'으로 자주 추천되던 제품이다. VRAM 용량 덕분에 텍스처 옵션에서 여유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장점이 이번 인상에서는 약점이 됐다. 메모리를 많이 실었다는 이유로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8GB 모델로 내려가는 선택지도 애매하다. 인상폭은 작지만, 최신 게임에서 VRAM 부족으로 옵션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 이미 보고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적당한 값에 충분한 성능'이라는 중급기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흐려졌다.

상위 모델의 인상폭이 작다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애초에 절대 가격이 이미 높기 때문이다.

지금 사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당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 메모리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되는 한 메모리 제조사가 소비자용 물량을 늘릴 유인이 크지 않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올해 신형 게이밍 GPU 아키텍처를 내놓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세대가 나와 구세대 가격을 끌어내리는 통상적인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즉 '기다리면 싸진다'는 공식이 이번에는 잘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반드시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면 몇 가지 기준을 잡아 두는 편이 좋다.

먼저 중앙값은 어디까지나 중앙값이라는 점이다. 시점과 판매처에 따라 실제 가격은 크게 벌어지므로, 가격 추적 사이트로 며칠 흐름을 본 뒤 결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다음으로 중고 시장을 함께 살펴볼 만하다. 신품 가격이 오르면서 이전 세대 제품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간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당장 급하지 않다면 무리한 구매는 피하는 것이 낫다. 이 가격대는 정상적인 시장 가격이 아니라 공급 위기가 만든 값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