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올해 새로운 게이밍 GPU 아키텍처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사실이라면 1999년 지포스256 출시 이후 약 30년 만에 처음 있는 공백이다. 업계 매체들은 AI 가속기에 밀린 메모리 공급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이런 흐름 속에 RTX 5090의 실구매가는 이미 출시가의 두 배를 넘어선 상태다.
공식 발표는 아직 — 엔비디아 "공급사와 메모리 확보 노력 중"
이 소식의 출발점은 정보전문매체 '더 인포메이션'의 보도로, 이후 트렌드포스·톰스하드웨어·키트구루·비디오카드즈 등 여러 매체가 이를 인용해 확산됐다. 다만 엔비디아가 공식적으로 "올해 신형 게이밍 GPU가 없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취재에 응한 엔비디아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지포스 제품 공급을 계속하고 있으며, 공급사와 메모리 확보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을 뿐, 지연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RTX 50 슈퍼 리프레시('키커'라는 코드명으로 알려짐) 역시 공식적으로 취소됐다는 발표는 없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일부 보드 파트너사에 슈퍼 리프레시가 지연·보류됐다고 비공개로 전달했으며, 파트너사들도 아직 최종 사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매체 테크레이더는 별도 취재를 통해 "슈퍼 리프레시가 취소된 것은 아니고, 새 일정 없이 미뤄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RTX 60 시리즈 역시 원래 2027년 말 양산 목표였으나, 리커(kopite7kimi) 등 유출 소식통과 키트구루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2028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유력하다.
원인은 반도체 공정이 아니라 '메모리' — AI가 GDDR7을 다 가져갔다
이번 공백의 원인은 반도체 생산 공정 자체의 병목이 아니라, D램·HBM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2026년 HBM 생산 물량이 이미 AI 데이터센터 고객사에 대부분 팔려나가면서, 게이밍 카드에 쓰이는 GDDR7 공급까지 함께 타이트해졌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개당 3만~4만 달러에 팔리고 영업이익률이 약 69%에 달하는 AI 가속기(블랙웰 B200 등)에 한정된 메모리를 우선 배정하는 쪽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반면 게이밍 카드는 299~1,999달러대에 팔리고 영업이익률도 약 4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다. 실제로 엔비디아 전체 매출에서 게이밍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같은 시기 약 35%에서 현재 8% 미만으로 줄어든 반면, 데이터센터 부문은 91.5%까지 늘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4월 모건스탠리 TMT 콘퍼런스에서 메모리 배정 방식에 대해 "최고가 입찰이 아니라 선착순"이라고 밝히면서도,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환상적"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는 이 메모리 부족 현상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로 인해 "지금 당장 게임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같은 시기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와의 파트너십도 발표했다.
RTX 5090 실구매가 2배 폭등 — "MSRP에 살 수 있으면 그 자체로 뉴스"
가격 상승은 이미 현실이 됐다. RTX 5090은 출시가(1,999달러) 대비 현재 실구매가가 4,300~5,000달러 선으로, 최소 2배 이상 오른 상태다. RTX 5080(출시가 약 999달러)은 1,250~1,400달러, RTX 5070 Ti(749달러)는 한때 900~1,22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980달러 선으로 다소 진정됐고, RTX 5070(549달러)은 599~65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8월 퀘이크콘 2026에서 엔비디아가 RTX 50 시리즈를 출시가 그대로 판매한 것이 오히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시 1년이 지난 시점에 정가로 카드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뉴스거리로 다뤄질 정도로 가격 왜곡이 일상화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지금 RTX 5070을 정가 근처(650달러 이하)에서 살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로 보는 시각이 많다. RTX 5060 Ti 8GB 모델은 단종 수순을 밟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2GB RTX 5060(비-Ti) 모델이 약 299달러 선에서 그 자리를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RTX 60 시리즈를 기다리며 6~12개월을 버티는 전략에 대해서는, 가격이 10~20% 더 오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데다 재고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는 게 업계 조언이다.
반사이익 볼 것 같던 AMD도 사정은 마찬가지
엔비디아의 공백을 AMD가 반사이익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AMD의 개별 그래픽카드(라데온) 시장 점유율은 2025~2026년 사이 약 15%에서 5%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도됐다. 일부 매체는 엔비디아의 개별 게이밍 GPU 시장 점유율이 94~95%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전한다.
AMD의 차세대 라인업 'RDNA5' 역시 같은 메모리 공급난 탓에 2027년 말에서 2028년 초로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AMD는 RDNA4 세대에서 아예 RX 9080·9090 같은 고성능 모델을 건너뛰면서, RTX 5080·5090급에 맞설 경쟁 제품이 RDNA5가 나올 때까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요컨대 이번 메모리 부족은 엔비디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을 관통하는 제약이며, 엔비디아의 공백을 AMD가 파고들 여지도 크지 않다는 게 현재까지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