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억 4,200만 원. 전자상거래법 위반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유료 아이템 '큐브'의 확률을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바꾸고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 과징금이 정당한지를 가리는 소송의 선고가 벌써 세 차례 밀렸다. 처음 예정됐던 2025년 12월 17일에서 9월 2일까지, 왜 이렇게까지 늦어졌을까. 그리고 이 재판이 왜 확률형 아이템 규제 전체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불리는지 살펴봤다.
2010년 큐브, 2024년 116억 원
사건의 뿌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플스토리에 도입된 유료 아이템 '큐브'는 장비를 강화하는 데 쓰이는 확률형 아이템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넥슨은 2010년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일부 옵션이 나오지 않도록 확률을 변경했고, 2013년에는 블랙큐브의 등급 상승 확률을 낮추면서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2021년이었다. 이용자들이 실제 확률이 고지된 것과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공정위 조사로 이어졌다.
조사 결과 공정위는 2024년 1월, 넥슨에 시정명령과 함께 116억 4,2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전자상거래법 위반 사건 역대 최고액이었다.
핵심 쟁점은 단순하다. 확률을 바꾸고도 알리지 않은 행위가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를 속이는 '기망행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넥슨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가 법적 의무로 명문화된 건 2024년 3월부터인데, 그 이전 행위에 지금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 소급 적용이라는 논리다.
왜 세 번이나 미뤄졌나
넥슨이 낸 과징금 취소소송의 선고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3부가 처음 잡았던 선고일은 2025년 12월 17일이었다. 이 일정은 2026년 1월 28일로 한 차례 밀렸다.
이후 재판부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변론을 다시 열었고, 선고일을 7월 22일로 재조정했다.
그런데 7월 22일 선고를 코앞에 두고 넥슨이 추가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더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선고를 9월 2일로 다시 미뤘다.
결국 처음 예정일로부터 아홉 달 가까이 지나서야 선고가 이뤄지는 셈이다. 세 차례 연기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그 자체로 이 사건의 무게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선고를 앞두고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법원 앞에 시위 트럭을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넥슨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소송을 계기로 다시 터져 나온 모양새다.
과징금이 실제로 억제력이 있을까 — 웹젠 사례가 보여주는 것
이 소송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자체의 실효성 논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 사례가 이 논란을 잘 보여준다. 공정위는 웹젠이 모바일 게임 '뮤 아크엔젤'에서 희귀 아이템 확률을 0%로 숨긴 채 0.25~1.16%로 표기했다며 과징금 1억 5,800만 원을 부과했다.
그런데 웹젠이 이 구조로 거둔 매출은 약 67억 원, 피해를 본 이용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됐다. 과징금이 위반으로 얻은 수익의 극히 일부에 그친 셈이다.
자체 보상도 미미했다. 웹젠이 환불이나 보상을 진행한 인원은 860명 수준으로, 전체 피해자의 5%에도 못 미쳤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며 나온 목소리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해 "우회 말고 즉각 제재해야 한다"며, 형사처벌은 벌금이나 집행유예에 그쳐 효과가 크지 않은 만큼 위반으로 번 이익 자체를 환수하는 경제적 제재, 이른바 '금융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넥슨 소송의 116억 원이라는 액수 자체가 이례적으로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대 최대 과징금이 실제로 법원에서 인정받는지가, 앞으로 다른 게임사들에게 보내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9월 2일, 그리고 그 이후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9월 2일 선고 결과는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미 세 차례나 미뤄진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결과가 곧바로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넥슨이 전면적인 과징금 취소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확률을 사실상 0%로 만들어 놓고 이를 숨긴 행위 자체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법 시행 이전 행위에 대한 소급 제재가 가능한지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게임사들의 향후 대응 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
확률형 아이템 표기의무 위반은 이미 반복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과징금이 위반으로 번 이익보다 작다면, 처벌은 그저 사업 비용의 일부로 여겨질 뿐이라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결국 이번 소송은 단순히 넥슨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말뿐인 제도로 남을지, 실제로 업계의 행동을 바꾸는 장치가 될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큰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