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어려울 때 우리는 보통 자기 실력을 탓한다. 그런데 그 난이도가 어디서 왔는지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2007년 '언차티드: 드레이크의 운명'은 플레이어가 잘하면 몰래 난이도를 올렸다. 2년 뒤 나온 '데몬즈 소울'은 정반대를 택했다. 난이도를 고정하고 옵션조차 두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갈라진 두 노선이 각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 둘 다 흔들리는지 정리했다.

노선 A — 숨기고 조절한다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 '드레이크의 운명'은 전투 구간의 소요 시간을 재서 난이도를 조정했다. 사진: Naughty Dog / SIE

전 너티독 디자이너 벤슨 러셀이 최근 털어놓은 이야기가 이 노선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언차티드: 드레이크의 운명'에는 플레이어에게 표시되지 않는 난이도 조정 장치가 들어 있었다.

작동 기준은 시간이었다. 포커스 테스트로 구간별 평균 클리어 시간을 뽑아 두고, 플레이어가 그보다 빨리 끝내면 난이도를 올렸다.

목적이 특이했다. 밸런스가 아니라 분량이었다.

러셀의 표현은 이랬다. "멀티플레이도 없는 5시간짜리 게임을 60달러에 팔 순 없잖아요."

즉 콘텐츠를 늘릴 시간이 없으니 있는 콘텐츠를 오래 붙잡아 두기로 한 것이다.

이 장치는 '언차티드 2'와 '3'에도 남았다. 다만 분량 문제가 없어진 뒤에는 목적이 바뀌었다. 시간 끌기가 아니라 실력에 맞춘 균형 조절로 옮겨갔다.

이 노선의 논리는 명확하다. 실력 편차가 큰 이용자층을 하나의 설계로 감당하려면 보이지 않는 보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선 B — 드러내고 고정한다

세키로에서 주인공이 갈고리를 던지며 눈 덮인 성 위를 공중으로 도약하는 장면
▲ '세키로'는 성장을 통한 우회로마저 막아 두어 난이도 논쟁의 정점을 찍었다. 사진: FromSoftware / Activision

프롬소프트웨어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2009년 '데몬즈 소울' 이후 이 회사의 게임에는 난이도 선택 메뉴가 없다.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조건에서 시작한다.

자동 보정도 없다. 잘한다고 적이 강해지지 않고, 못한다고 약해지지도 않는다.

대신 다른 장치를 뒀다. 재도전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체크포인트를 촘촘히 배치하고 로딩을 짧게 유지해, 죽는 것이 흔한 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보스의 공격에는 거의 예외 없이 예비 동작이 붙어 있다. 무기를 드는 각도, 몸이 기우는 방향, 소리까지 매번 같다.

즉 처음 죽었을 때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좌절이 아니라 정보다.

이 노선의 논리도 명확하다. 조건이 같아야 성취가 공유되고, 그래야 공략 문화와 커뮤니티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장르는 유독 커뮤니티가 강하다. 같은 벽을 같은 조건에서 넘었다는 전제가 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두 노선이 각각 잃은 것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정글 속 절벽 사이를 뛰어 건너는 장면
▲ 숨긴 보정은 플레이어가 얻어 낸 결과를 게임이 되돌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사진: Naughty Dog / SIE

A 노선이 잃은 것은 신뢰다.

난이도를 직접 고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자신이 고른 값이 실제 값이 아니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성취의 무효화다. 잘해서 빨리 넘었더니 게임이 그만큼 어렵게 만든다면, 실력 향상이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언차티드 증언이 화제가 된 이유도 시스템의 존재보다 그것이 감춰져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게다가 목적이 '분량 부풀리기'였다는 점에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B 노선이 잃은 것은 접근성이다.

난이도가 고정되면 넘지 못하는 사람은 작품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다. 이야기도 미술도 음악도 벽 뒤에 남는다.

신체적 제약이 있는 이용자나 시간이 부족한 이용자에게는 특히 가혹하다.

이 논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점은 2019년 '세키로' 출시 직후였다. 성장을 통한 우회로마저 막혀 있어 실질적인 조절 수단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노선 모두 중간으로 이동 중

엘든 링에서 밤하늘 아래 풀밭에 앉은 두 인물과 멀리 빛나는 황금나무가 보이는 장면
▲ '엘든 링'은 옵션 대신 구조로 난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 FromSoftware / Bandai Namco

흥미로운 것은 두 노선이 최근 서로의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프롬소프트웨어의 답은 옵션 메뉴가 아니라 구조 변경이었다.

'엘든 링'은 오픈월드를 도입해 세 번째 선택지를 만들었다. 벽에 부딪히면 계속 도전하거나 그만두는 대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정령 유골 소환이 더해졌다. 온라인 협력이 아니라 싱글 상태에서 아군을 부를 수 있게 되면서 보스전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난이도 조절을 옵션이 아니라 게임 안의 행동으로 만든 셈이다.

다른 개발사들은 더 직접적인 길을 택하고 있다. 'P의 거짓'은 확장팩 '오버추어'에서 난이도 선택지를 정식으로 넣었다. '나비의 인도', '각성한 인형', '전설의 스토커' 세 단계다.

소울라이크 계열에서 난이도 옵션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게 되는 흐름이다.

반대편에서도 변화가 있다. 동적 난이도 자체는 지금 다수의 게임에 들어가 있지만, 목적을 '이용자 경험 개선'으로 밝히는 경우가 늘었다. 분량을 늘리기 위해 쓴다는 설명은 이제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남는 질문은 '알려줄 것인가'

P의 거짓에서 주인공이 전기를 뿜는 붉은 눈의 기계 인형과 밤거리에서 싸우는 장면
▲ 'P의 거짓'은 확장팩에서 세 단계 난이도를 정식 도입했다. 사진: 네오위즈 / 라운드8 스튜디오(현 너프 스튜디오)

두 노선을 비교하면 진짜 쟁점이 난이도의 높낮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핵심은 정보다. 게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플레이어에게 알려주느냐다.

소울라이크는 정보를 숨기는 장르로 유명하지만, 정작 난이도에 관해서는 가장 투명하다. 자동 보정이 없으니 화면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반대로 친절하다고 여겨지는 게임들이 난이도에 관해서는 불투명한 경우가 있다. 언차티드가 그 사례다.

이 대비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불친절함과 불투명함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접근성 논의가 '어시스트 모드'처럼 명시적인 형태로 수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와주되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방식이다.

정리하면 이렇게 볼 수 있다.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조절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알 수 있느냐가 문제다.

17년 전 갈라진 두 노선이 지금 같은 지점으로 수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