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 콘솔 게이머들의 기억에 또렷이 남은 명작을 만들고도, 단 한 작품의 실패로 순식간에 사라진 서구 게임 스튜디오들이 있다. 국가 보조금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부터, 소송에서 져 자기가 만든 게임을 법원 명령으로 직접 파기해야 했던 사례까지 — 콘솔 시대를 풍미하다 무너진 스튜디오 5곳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5위 — 팩터5, PS3에 발목 잡힌 닌텐도 하드웨어의 마법사
독일 쾰른에서 시작한 팩터5는 아미가 시절 '투리칸'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뒤, 닌텐도와 손잡고 'N64용 스타워즈: 로그 스쿼드론'으로 도약했다.
특히 게임큐브 출시작이었던 '로그 스쿼드론2: 로그 리더'는 메타크리틱 90점을 받으며 게임큐브 최고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타이틀로 꼽혔다. 닌텐도는 아예 팩터5를 게임큐브·Wii 칩셋 설계 과정에 참여시킬 정도로 깊이 신뢰했다.
몰락의 시작은 2007년 PS3 독점작 '레어'였다. 원래 Wii 기술 데모로 시작했다가 PS3용으로 방향을 튼 이 게임은, 용을 타고 싸우는 전투 전체를 오직 식스액시스 모션 컨트롤 하나로만 조작하게 설계됐다.
아날로그 스틱 조작조차 지원하지 않은 이 결정은 치명적이었다. 메타크리틱 53점을 받았고, 집계 사이트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략 50만 장 안팎의 부진한 판매량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듬해 뒤늦게 아날로그 스틱 지원 패치를 냈지만 이미 평판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팩터5의 주요 퍼블리셔였던 브래시 엔터테인먼트가 2008년 11월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다. 팩터5 직원들도 그달부터 월급을 받지 못했고, 2009년 5월 미국 지사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더 씁쓸한 뒷이야기도 있다. 당시 부분적으로만 완성돼 있던 Wii용 '로그 스쿼드론' 리마스터 프로젝트를 두고, 전직 직원들은 창업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소스코드와 IP를 '블루 하베스트'라는 유령회사로 빼돌려 채권자와 직원들을 따돌리려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프로젝트는 후신 격인 '화이트 하베스트'에서 실제로 완성까지 됐지만, 소송으로 인한 잡음을 우려한 루카스아츠가 결국 출시를 접었다. 독일 본사 역시 2011년 청산됐다.
4위 — 프리 래디컬 디자인, 골든아이의 후예가 두 번 무너지다
1999년, N64 명작 '골든아이 007'과 '퍼펙트 다크'를 만든 레어 출신 개발자 4명이 의기투합해 프리 래디컬 디자인을 세웠다.
이들이 만든 'TimeSplitters' 시리즈는 특유의 만화풍 비주얼과 멀티플레이 중심 설계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02년 나온 'TimeSplitters2'는 평단 만점급 극찬과 함께 영국 BAFTA 후보에 5개 부문이나 오르며 스튜디오의 정점을 찍었다.
몰락의 계기는 2008년 PS3 독점작 '헤이즈'였다. 언론은 이 게임을 '헤일로 킬러'라 부르며 띄웠지만, 정작 퍼블리셔 유비소프트는 완성도를 다듬을 시간을 요구하는 개발진에게 오히려 새 기능 추가를 같은 일정 안에 요구하는 등 파행적인 관리로 일관했다.
사운드 작곡가 그레임 노르게이트는 당시 상황을 "집 나머지가 불타는 와중에 벽지를 바르고 있던 격"이라고 회고했다. 결과는 메타크리틱 50점대, 판매량 약 50만 장이라는 참패였다.
설상가상으로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3'가 완성 99% 단계에서 루카스아츠에 의해 취소됐다.
헤이즈 실패로 신뢰를 잃은 스튜디오는 후속작 'TimeSplitters4'조차 퍼블리셔를 구하지 못했고, 2008년 말 200명이던 직원이 40명으로 줄며 사실상 붕괴했다.
이듬해 크라이텍이 잔여 자산을 인수해 '크라이텍 UK'로 재편했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1년 창업 멤버들이 다시 '프리 래디컬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재기를 시도해 새 TimeSplitters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모회사 엠브레이서 그룹의 자금난으로 2023년 12월 재차 문을 닫으며, 같은 스튜디오가 두 번이나 무너지는 보기 드문 사례를 남겼다.
3위 — 38스튜디오스, 야구선수의 꿈이 부른 국가 대출 스캔들
메이저리그 전설의 투수 커트 실링이 2006년 세운 38스튜디오스는 애초부터 '차세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출발했다.
R.A. 살바토레의 세계관, 토드 맥팔레인의 아트, '엘더스크롤' 시리즈 리드 디자이너 켄 롤스턴까지 영입한 초호화 진용이었다. 2012년 내놓은 싱글 액션 RPG '킹덤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은 평단의 호평 속에 90일 만에 130만 장 가까이 팔리며 EA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문제는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는 이 게임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300만 장 이상 팔려야 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스튜디오가 진짜 노리던 목표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MMORPG '코페르니쿠스'였다.
이 프로젝트 자금을 대기 위해 로드아일랜드주는 2010년 7,500만 달러 규모의 대출 보증을 내줬고, 실링 본인도 자신의 500만 달러 상당 금화 컬렉션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따로 받았다.
여기에 더해 회사 측 변호사가 아직 발급되지도 않은 로드아일랜드주 영화 세액공제 1,430만 달러어치를 담보로 850만 달러를 추가로 빌리는 등, 무리한 자금 조달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2012년 5월, 회사는 대출 상환에 실패했고 직원 약 400명 전원이 이메일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미 밀린 월급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다.
곧이어 파산 신청 당시 부채는 1억5,070만 달러, 그중 1억1,590만 달러가 주정부에 진 빚이었다.
이후 몇 년에 걸친 소송과 SEC 조사, 형사수사까지 이어졌지만 형사 기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로드아일랜드 주민들은 여러 합의금을 제하고도 약 3,800만 달러의 순손실을 떠안았다.
실링 본인은 야구로 벌어들인 1억1,500만 달러 중 자신의 개인 재산 5,000만 달러 전액을 이 사업에서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완성도 75% 수준이던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에 공개조차 되지 못한 채, 파산 경매에서 인수자를 찾지 못해 아예 팔리지 못했다. 같이 경매에 나온 빅 휴 게임즈 상표권 등 다른 자산들만 합쳐 32만 달러에 팔렸을 뿐이다.
2위 — 팀본디, 성공한 지 몇 주 만에 무너진 아이러니
호주 시드니의 팀본디는 소니 '더 게터웨이'를 만들었던 브렌던 맥나마라가 2003년 세운 스튜디오다.
얼굴 표정을 32대 카메라로 정밀 촬영해 게임에 그대로 담아내는 신기술 '모션스캔'을 앞세운 'LA 느와르'는 무려 7년 넘게 개발이 이어졌다. 소니가 예산 초과로 발을 뺀 뒤 락스타(테이크투)가 2006년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완성시켰다.
게임은 2011년 5월 출시돼 평단의 극찬은 물론 그해 신규 IP 중 최고 판매량(약 500만 장)을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런데 성공의 순간, 정반대의 소식이 함께 터졌다. IGN·코타쿠 등 매체가 폭로한 내부 실태에 따르면 개발 기간 내내 주 60시간, 크런치 시기엔 주 110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노동이 이어졌다.
초과근무 수당은 게임 출시 3개월 후에야, 그것도 중도 퇴사자는 아예 받지 못하는 계약 조항으로 직원들을 사실상 붙잡아뒀다.
개발 도중 떠난 130명이 넘는 개발자의 크레딧이 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된 사실도 드러나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까지 나서 공식 조사에 착수할 정도였다.
이 스캔들의 여파로 락스타는 후속작 지원에 등을 돌렸고, 결국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지 불과 석 달 만인 2011년 8월 팀본디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밀린 임금만 40여 채권자에게 총 140만 호주달러에 달했다.
창업자 맥나마라를 포함한 남은 인력은 조지 밀러 감독('매드맥스' 시리즈)의 제작사로 흡수돼 새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이마저 2013년 퍼블리셔가 발을 빼며 무산됐다.
1위 — 사일런트 나이츠, 법원 명령으로 자기 게임을 파기당하다
캐나다의 사일런트 나이츠는 게임큐브 컬트 명작 '이터널 다크니스'로 메타크리틱 92점을 받으며 평단의 극찬을 얻었다.
이 실력을 눈여겨본 코나미의 코지마 히데오가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이 스튜디오를 추천하면서, '메탈기어솔리드' 리메이크판 '더 트윈 스네이크' 개발까지 맡을 정도로 업계의 신뢰를 받는 스튜디오로 떠올랐다.
다만 이터널 다크니스는 평단의 극찬과 달리 전 세계 판매량이 50만 장을 밑돌며, 훗날 벌어질 비극의 전조를 이미 품고 있었다.
진짜 몰락의 씨앗은 1999년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처음 발표된 '투 휴먼'이었다. 게임큐브로, 다시 2005년 엑스박스360 독점으로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무려 9년을 끈 이 프로젝트는 3부작으로 기획돼 6,000만~1억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마침내 출시됐지만 메타크리틱 65점에 그쳤다. 창업자 데니스 다이액은 혹평에 "우리가 만든 게 얼마나 혁신적인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한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설전을 벌이는 등 자충수를 뒀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따로 있었다. 사일런트 나이츠는 언리얼 엔진3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계약 위반이라며 2007년 에픽게임즈를 상대로 라이선스 비용 환불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그러자 에픽은 오히려 사일런트 나이츠가 자사의 저작권 코드를 그대로 베껴 자체 엔진을 만들었다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5월 배심원단은 에픽의 손을 들어줬고, 그해 11월 후속 판결로 배상금은 이자·소송비용까지 합쳐 900만 달러를 넘겼다.
법원은 한술 더 떠 언리얼 엔진3로 만든 모든 게임(투 휴먼·엑스맨: 데스티니 포함)의 재고를 회수·파기하고, 개발 중이던 3부작 후속편 등 미공개 신작들의 소스코드까지 영구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신들이 9년을 바쳐 만든 게임을, 법원 명령으로 스스로 파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직원은 2011년 7월 97명에서 그해 안에 절반 넘게 줄어든 뒤, 2012년 10월에는 단 5명까지 쪼그라들었고, 2014년 파산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다이액이 이후 크라우드펀딩으로 재기를 노린 '섀도 오브 디 이터널스' 역시 두 차례 모두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하고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