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는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하나의 발표문을 올렸다. 표면적으로는 담담한 기업 공지문이었지만, 그 내용은 30년 가까이 게이머들의 손에 들려 있던 '디스크'라는 물건 자체의 운명을 가르는 선언이었다. 2028년 1월부터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용 신작 게임의 물리 디스크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 이 짧은 발표는 곧 전 세계 게이머, 개발사, 소매업계, 그리고 게임 보존 활동가들까지 끌어들인 거대한 논쟁으로 번졌다.

무엇이 발표됐나 — 2028년 1월, 디스크 생산 전면 중단

발표를 맡은 시드 슈만(Sid Shuman) SIE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수석 이사는 이번 결정을 "소비자 선호도와 더 넓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물리 디스크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는 추세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현재 게임에 접근하고 플레이하는 방식에 더 밀접하게 조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핵심은 시점이다. 2028년 1월 이후 출시되는 신작 게임부터 물리 디스크 생산이 중단되며, 이후로는 퍼스트파티·서드파티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신작이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또는 소매점의 다운로드 코드를 통해서만 디지털로 판매된다. 남은 약 1년 반의 유예 기간 동안에는 지금과 다름없이 디스크판 신작이 계속 출시된다.

이미 나온 게임엔 영향 없다 — 재판매·재발주는 계속된다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는 PS5 디지털 에디션
▲ 디스크 드라이브가 아예 없는 PS5 디지털 에디션은 이미 2020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이번 결정이 이미 출시된 게임까지 소급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2028년 1월 이전에 나온(또는 나올 예정인) 디스크판 타이틀은 계속 재생, 재판매, 대여, 중고 거래가 가능하며, 소니는 퍼블리셔가 원할 경우 기존 타이틀의 디스크 재발주(reorder)도 계속 받는다고 명시했다. 즉 지금 서랍 속에 있는 PS5 디스크들이 갑자기 재생 불가능해지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PS5 콘솔 자체의 외장형·내장형 디스크 드라이브 판매도 이번 결정과 무관하게 계속된다. 애초에 드라이브가 없는 PS5 디지털 에디션이 2020년 출시 때부터 존재해온 만큼, '디스크 없는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소니가 밝힌 배경 — 디지털 85%, 물리 15%

소니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명확한 수치가 있다. TechCrunch가 입수한 소니의 2025 회계연도 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PS4·PS5 전체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디지털 다운로드가 85%, 물리 디스크는 단 15%에 불과했다. 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GameSpot에 따르면 PS4가 출시됐을 당시(2013년)만 해도 디지털 판매 비중은 10% 미만이었는데, 불과 십수 년 만에 정반대의 비율로 뒤집힌 셈이다.

여기에 소매 유통망의 붕괴도 한몫했다. 물리 매체 판매에 크게 의존해온 대형 소매체인 게임스탑(GameStop)은 최근 2개 회계연도 동안 1,300개 이상의 매장을 폐점했다. 디스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소니 입장에서는 이제 명백한 소수 취향이 된 물리 디스크 생산 라인을 유지하는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동반 폐쇄 — PS3·PS Vita 스토어까지 문을 닫는다

PS Vita 휴대용 콘솔
▲ PS Vita 스토어는 2027년 7월까지 전 세계에서 완전히 문을 닫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소니는 PS3·PS Vita 스토어의 운영 종료 일정도 함께 공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2026년 8월부터 순차적으로 스토어가 닫히며, 2027년 7월까지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완전히 종료된다. 스토어가 닫힌 이후에는 해당 플랫폼에서 신규 디지털 콘텐츠 구매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리 디스크 생산 중단 발표와 겹치며, 이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사더라도 접근권이 기업의 결정 하나에 좌우된다"는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 타임라인 한눈에 보기

· 2026년 7월 1일 — 물리 디스크 생산 중단 및 PS3·Vita 스토어 종료 계획 공식 발표
· 2026년 8월 — 일부 지역 PS3·Vita 스토어 순차 종료 시작
· 2027년 7월 — PS3·Vita 스토어 전 세계 완전 종료
· 2028년 1월 — PS 신작 물리 디스크 생산 전면 중단, 이후 신작은 디지털 전용

예고편이었다 — GTA6 '디스크 없는 패키지' 논란

돌이켜보면 이번 발표는 예고 없이 터진 사건이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 록스타 게임즈가 'GTA 6'의 실물 패키지 에디션을 공개했는데, 박스 안에 든 것은 게임 디스크가 아니라 일회성 다운로드 코드뿐이었다. 소장을 위해 실물판을 구매하려던 팬들은 격분했다 — 디스크가 없으니 중고 거래도, 대여도, 친구에게 빌려주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40년 전통 게임 소매점 Video Games Plus(VGP)는 "코드만 든 박스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자체 정책에 따라 GTA 6 패키지 입고를 거부하기도 했다(록스타는 이후 몇 달 뒤 정식 디스크판을 별도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업계 전체가 '디스크 없는 물리판'이라는 기묘한 절충안으로 기울고 있던 정황 속에서, 소니의 이번 발표는 그 흐름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공장의 변신 — 디스크에서 마이크로렌즈로

이 결정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준비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도 있다. 소니가 사실상 유일하게 완전 소유한 PlayStation 디스크 공장인 오스트리아 탈가우(Thalgau) 공장은 이미 광학 마이크로렌즈 생산 라인으로 전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소니는 이 전환에 약 3,000만 유로(약 3,4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알려졌다. 이 공장은 현재 하루 60만 장의 디스크를 생산하며 그중 절반이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디스크인데, 2028년이면 이곳의 디스크 생산량이 지금의 10% 수준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렌즈는 카메라 센서, AR·VR 헤드셋, 광통신 장비, 의료기기 등에 쓰이는 초정밀 광학 부품으로, 이르면 2027년부터 양산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미 탈가우 공장 직원들은 새 생산 기술에 대한 재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슴이 찢어진다" — 개발사들의 반응

발더스 게이트 3 디럭스 에디션 실물판, 디스크와 사운드트랙 CD
▲ '발더스 게이트 3' 디럭스 에디션 PS5판에는 게임 디스크 2장과 사운드트랙 CD가 포함됐다. ⓒ Larian Studios
발더스 게이트 3 디럭스 에디션 아트북과 지도, 스티커 등 동봉품
▲ 아트북, 지도, 스티커까지 포함된 디럭스 에디션 동봉품 구성. ⓒ Larian Studios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발더스 게이트 3'를 만든 라리안 스튜디오(Larian Studios)의 퍼블리싱 총괄 마이클 다우스(Michael Douse)는 이번 결정을 "진심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일 (genuinely heartbreaking)"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이끌었던 '발더스 게이트 3' PS5판 디럭스 에디션은 게임 디스크 2장에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CD 3장, 아트북, 지도, 스티커까지 담아낸 실물 컬렉터스 에디션의 정석 같은 제품이었다. 다우스는 이 실물판 제작에 "터무니없는 돈(silly money)"이 들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팬들을 행복하게 만든 자신의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아가 "라이선스를 받은 단일 업체가 수집가와 마니아를 위해 계속 디스크를 제작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코지마 히데오의 경고 — "그것이 무섭다"

코지마 히데오 감독
▲ '메탈기어', '데스 스트랜딩'의 코지마 히데오 감독.

'메탈기어', '데스 스트랜딩'의 코지마 히데오 감독도 이탈리아 영화제 '일 시네마 인 피아자'에서 이 사안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트위터 사용자 @Genki_JPN 번역 인용). 그는 "생산이 2028년에 끝난다니, 비디오게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실물 매체와 함께 자랐기에 정말 슬프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도 다양한 영화의 블루레이나 CD를 많이 사 모으고 있다"고 덧붙인 그는, 게임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근본적인 차이를 짚었다. "게임은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로드되기 때문에 데이터가 자신의 기기에 남는다. 하지만 앞으로 스트리밍으로 전환된다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다."

그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예로 들며 "어딘가에 서버가 있고, 우리는 월 구독료를 내고 '수도꼭지를 트는' 권리만 갖게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국가나 정치, 여러 사고방식에 따라 만약 변화가 생긴다면 그 안의 데이터 배급이 중단될 가능성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좋아하는 영화나 게임을 더 이상 보거나 플레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무서운 점이다."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2028년 비디오게임에서 벌어지는 이 일이, 영화 산업에도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며 "모두가 이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10만 명이 서명했다 — 'Don't Kill the Disc' 청원 운동

팬들의 조직적인 저항도 빠르게 확산됐다. 물리 게임의 소유권, 대여, 재판매, 수집, 보존, 그리고 관련 소매업 일자리까지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Don't Kill the Disc' 청원 운동은, 소니의 발표가 있은 지 불과 며칠 만에 10만 명이 넘는 검증된 서명을 모았다. 게임 개발자, 평론가, 유튜버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보탰는데, 물리 게임 수집으로 잘 알려진 유튜버 스콧 더 워즈(Scott the Woz)는 소니의 발표에 찡그린 표정의 사진 한 장으로 답했고, 이 게시물은 하루 만에 10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반발이 향하는 지점은 대체로 일치한다. 물리 매체가 사라지면 소유권, 대여, 중고 거래,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접근성까지 한꺼번에 흔들린다는 것이다. 특히 소니가 최근 이용자 라이브러리에서 구매했던 영화 수백 편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사건이 재조명되며, "디지털 구매란 결국 소유가 아니라 대여에 가깝다"는 우려에 설득력을 더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 소매업계의 반발

게임스탑 매장 외관
▲ 물리 매체 소매업계는 이번 발표로 직접적인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게임스탑 매장 내부
▲ 게임스탑은 최근 2개 회계연도 동안 1,300개 이상의 매장을 정리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물리 매체에 기반한 소매업계다. 유럽의 게임 소매체인 Game은 SNS 성명에서 "최근 소식에 대해 — 우리의 침묵은 끝났다. 비디오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지킬 때"라며 "업계의 최근 결정들은 게임을 단순한 다운로드 파일 이상으로 여기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깊이 우려스럽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과 실물은 공존할 수 있고, 실제로 수년간 그래 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매업체 Loot Box Gaming은 "오늘부터 PS플러스 구독 해지 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며 "지갑으로 투표하면 기업들도 재정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영국의 Game, CeX, 미국의 게임스탑까지 — 물리 매체 유통에 의존해온 업체들에게 이번 결정은 사업 기반 자체를 흔드는 사안이다.

닌텐도·엑스박스는 다른가 — 엇갈리는 콘솔 제조사들

닌텐도 스위치 게임 카트리지 앞뒤 모습
▲ 닌텐도는 스위치 2에서도 대다수 퍼스트파티 타이틀을 완전한 실물 카트리지로 유지하고 있다.
엑스박스 시리즈 X 콘솔과 컨트롤러
▲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언젠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닌텐도는 스위치 2에서도 '마리오 카트 월드', '동키콩 바나자' 같은 퍼스트파티 타이틀 대부분을 게임 데이터가 그대로 담긴 완전한 실물 카트리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서드파티 타이틀 중 상당수는 카트리지를 꽂아야 인증되지만 실제 데이터는 다운로드해야 하는 '게임 키 카드' 방식으로 넘어가는 추세이며, 디지털 버전보다 물리판이 10달러 더 비싸게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닌텐도가 스위치 2 생애주기 동안 카트리지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은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는 사실상 소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TechRadar는 "지금은 플레이 스테이션만의 이야기지만, 차기 엑스박스가 사실상 PC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고려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뒤따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짚었다. 세 제조사의 온도차는 뚜렷하다 — 소니는 발을 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따를 채비를 하고 있으며, 닌텐도만이 홀로 실물 매체를 고수하는 모양새다.

▲ 소니의 물리 디스크 생산 중단 발표를 다룬 해외 반응 영상.

총평 — 보존, 소유권, 그리고 게임의 미래

이번 사태를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우리가 돈을 주고 산 게임을, 우리는 정말 소유하고 있는 가?"라는 것이다. 물리 디스크가 있는 한 그 답은 명확했다 — 서비스가 종료되든, 계정이 정지되든, 손에 쥔 디스크는 내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그 답이 훨씬 흐릿해진다. 접근권은 전적으로 플랫폼 기업의 손에 달리게 되고, 중고 거래도, 대여도, 가격 경쟁도 사라진 시장에서 소비자의 협상력은 크게 줄어든다.

소니는 이번 결정이 "자연스러운 방향 전환"이라고 강조했고, 숫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디지털 판매가 85%에 달하는 시장에서 소수의 물리 매체 생산 라인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코지마 히데오의 말처럼, 오늘 비디오게임에 벌어진 일이 내일 영화와 음악에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2028년 1월, 마지막 플레이스테이션 디스크가 공장 라인을 떠나는 순간까지 — 물리 매체를 둘러싼 이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