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이 이미 손을 뗀 지 오래인 아케이드 기판 'CP 시스템 III(CPS3)'가 최근 팬 개발자들의 손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 기판은 '스트리트파이터3: 서드 스트라이크', '조조의 기묘한 모험' 등 단 6개 작품만 나온 캡콤의 마지막 독자 아케이드 하드웨어로, 배터리가 다 닳으면 게임 자체가 영구히 먹통이 되는 이른바 '자살 배터리' 결함으로 악명 높다. 캡콤은 2019년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종료하며 사실상 손을 놓았지만, 최근 팬 커뮤니티가 미스터(MiSTer) FPGA 코어와 커스텀 바이오스를 잇달아 내놓으며 보존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배터리가 곧 목숨줄 — CPS3의 악명 높은 '자살 배터리'

CPS3는 1996년 등장해 1999년까지 사용된 캡콤의 아케이드 기판이다. 게임은 CD롬과, 게임별로 다른 보안 카트리지 한 쌍으로 구성됐는데, 이 카트리지 안에는 암호를 해독하는 CPU와 함께 배터리로 전원이 유지되는 SRAM에 복호화 키가 저장돼 있었다. 문제는 이 배터리가 다 닳거나 기판을 뜯어내는 등 변조가 감지되면 복호화 키가 영구히 삭제되며 카트리지 자체가 먹통이 된다는 점이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자살 배터리(suicide battery)'라는 악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예외적으로 '스트리트파이터3: 2nd 임팩트'는 고정 키를 써서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이 기판으로 나온 게임은 단 6종뿐이다. '레드 어스(워자드)', '스트리트파이터3: 뉴 제너레이션', '스트리트파이터3: 2nd 임팩트', '조조의 기묘한 모험', '스트리트파이터3: 서드 스트라이크', '조조의 기묘한 모험: 미래를 위한 유산'이 전부이며, 모두 격투 게임이다. 캡콤의 공식 대응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일반 기술 지원은 2015년 3월 종료됐고, 배터리 교체 서비스마저 2019년 2월을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후 캡콤 차원의 별도 보존 조치는 나온 적이 없다.

미스터 FPGA 코어와 커스텀 바이오스 — 팬들이 대신 나섰다

캡콤이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팬 개발자들이다. 개발자 '조테고(JOTEGO)'는 수년째 CPS3를 하드웨어 수준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FPGA 코어를 만들어왔는데, 지난 6월 12일 후원자 한정 베타가 공개됐다. 이 코어는 우선 64MB 메모리에 맞는 '스트리트파이터3: 뉴 제너레이션'과 '레드 어스' 두 작품부터 지원하며, 나머지 작품은 128MB 지원이 추가되는 대로 이어질 예정이다. 공개 무료 배포는 베타 이후로 예정돼 있다.

지난 7월 19일에는 별도의 커뮤니티 프로젝트 'CPS3 C-바이오스'도 공개됐다. 이 프로젝트는 캡콤의 원본 펌웨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지보수 메뉴, SIMM 직접 부팅, 선택적 플래시 재기록, 현대적인 NOR 플래시 대체품 지원 등을 패치로 얹는 방식이다.

이보다 앞서 커뮤니티에서 통용돼온 해법은 'DarkSoft 슈퍼바이오스' 모드였다. 이미 죽어버린 보안 카트리지의 바이오스 자체를 다시 써서, 암호화되지 않은 롬 이미지를 실행할 수 있게 만들어 사실상 죽은 기판을 되살리는 방식이다. 아케이드 수집 커뮤니티에서는 오랫동안 널리 쓰여온 방법이다. 이 밖에 지난 2월에는 '서드 스트라이크'를 윈도우·맥·리눅스에서 네이티브로 구동하는 초기 버전이 팬 개발자들 사이에서 보고되기도 했다.

캡콤의 간접적인 손길 — 정식 이식은 '레드 어스' 단 한 작품뿐

캡콤이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하드웨어 보존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식이었다. '서드 스트라이크'는 오래전 타이토의 아케이드 다운로드 네트워크 '네시카×라이브'로 이식돼, 운영자들이 원본 기판 없이도 현대 하드웨어에서 게임을 돌릴 수 있게 됐다. CPS3 작품 중 가정용 이식이 전혀 없었던 유일한 작품 '레드 어스/워자드'는 2022년 '캡콤 파이팅 컬렉션'에 수록되며 처음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다만 캡콤의 '아케이드 스타디움' 계열 모음집들은 지금까지 CPS1·CPS2 시대 작품 위주로만 구성돼 있어, CPS3 작품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자살 배터리 문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뿌리 깊은 불만으로 남아있다. 아케이드 수집 커뮤니티 포럼에서는 이 문제를 '시한폭탄'에 빗대며 애초에 CPS3 기판 구매 자체를 꺼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고, 죽은 카트리지를 되살리기 위한 DarkSoft 모드 관련 문의도 끊이지 않았다. 캡콤이 떠난 자리를 지금의 팬 보존 프로젝트들이 채워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