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단체전에서 한국이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재민(철권8), 이광노(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 연제길(스트리트파이터6) 3인으로 꾸려진 한국 대표팀은 9월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결승에서 개최국 일본을 세트 스코어 5-2로 꺾었다. 평균 연령 41.7세, '아재 삼인방'이라 불린 이들은 초반 열세를 딛고 역전승을 완성했다. 이번 대회는 스트리트파이터6·철권8·KOF XV 세 게임을 하나의 메달 종목으로 묶어 세트마다 게임을 바꿔가며 겨루는 첫 통합 단체전이기도 했다.
1-2로 뒤지다 내리 4연승 — 극적이었던 역전 결승
영상: 한국e스포츠협회 유튜브 채널
한국은 앞서 열린 준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세트 스코어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결과만으로 최소 은메달은 확보한 상태였다.
결승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국은 초반 세트를 내주며 1-2로 끌려갔다. 개최국 일본 관중 앞에서 치르는 원정 결승이라는 부담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흐름을 바꾼 건 이광노였다. 그가 KOF XV에서 연달아 승리를 챙기며 스코어를 2-2 동점으로 되돌렸다.
이후 배재민이 철권8에서 일본의 나카야마 다이치를 상대로 승리해 3-2로 앞섰고, 연제길이 스트리트파이터6에서 일본의 히구치를 잡아내며 4-2로 달아났다.
결승점은 다시 배재민의 몫이었다. 그는 나카야마와의 재대결에서 또 한 번 승리를 따내며 최종 스코어를 5-2로 확정지었다. 서울신문은 이 장면을 두고 "'무릎'이 끝냈다"고 표현했다.
은메달은 일본, 동메달은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공동으로 가져갔다.
'무릎' 배재민, 30년 철권 인생의 정점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단연 배재민이다.
닉네임 '무릎'으로 활동하는 그는 41세로, 동네 오락실에서 격투게임을 시작해 30년 이상 최정상급 실력을 유지해온 백전노장이다.
그는 결승 5세트에서 자신의 주특기 캐릭터로 나카야마를 꺾으며 팀에 첫 역전 발판을 마련했고, 마지막 7세트에서는 또 다른 필살 캐릭터 브라이언 퓨리로 2-0 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배재민은 경기 직후 "우리도 40대지만 해냈다. 40대들이 이 모습을 보고 힘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30년 넘게 게임을 해오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날"이라며 "우리 모습을 보고 누군가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대표팀 맏형인 이광노(45)는 "50대가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고, 막내인 연제길(39)은 재택근무로 육아를 지원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부산 합숙 한 달, 하루 14시간 훈련
세 선수의 나이를 합치면 125세, 평균 41.7세에 이른다. 세대교체가 유독 빠른 e스포츠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구성이다.
이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한 건 철저한 준비 과정이었다.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약 한 달간 부산에서 합숙하며 상대 전력을 분석하고 팀플레이를 맞췄다.
훈련 강도도 상당했다. 하루 14시간이 넘는 고된 훈련을 소화했고, 선수촌에 입촌한 뒤로는 규칙적인 생활과 물리치료를 통한 컨디셔닝으로 만성 통증을 관리하며 경기력을 유지했다.
이광노는 이후 인터뷰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부모님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며 "배재민 선수가 7세트에 나섰을 때도 이길 거라는 믿음이 있어 편하게 지켜봤다"고 동료들에 대한 신뢰를 전했다.
연제길은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팀의 메시지를 요약했다.
이런 준비 과정이 원정 결승이라는 부담스러운 무대에서 초반 열세를 뒤집는 뒷심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이번이 '첫 금메달'인가 — 통합 단체전으로 바뀐 대전격투
대전격투 종목이 아시안게임 메달 종목에 오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 항저우 대회에서도 이미 격투게임 부문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스트리트파이터5가 단독 종목으로 치러졌고, 당시 한국의 김관우가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아이치·나고야 대회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스트리트파이터6·철권8·KOF XV 세 게임을 하나로 묶어, 세트마다 게임을 바꿔가며 승부를 가리는 국가 대항 통합 단체전으로 처음 치러진 것이다. 이 새로운 형식에서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한국이 된 셈이다.
동시에 한국은 대전격투 종목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기록도 이어갔다. 종목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국가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승리로 한국 선수단의 금메달은 14개로 늘었고, e스포츠 종목에서는 금·은·동을 각각 하나씩 수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