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레프트 4 데드 2'의 시네마틱 트레일러가 인터넷에 돌았다. 당시에는 유출로 받아들여졌다. 팬도 매체도 그렇게 다뤘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 프로젝트 리드였던 쳇 팔리셱이 다르게 말했다. "우리가 트레일러를 유출시켰다."

심의가 막아선 트레일러

레프트 4 데드 2의 특수 감염자가 불길 앞에서 달려드는 장면
▲ 게임의 폭력 묘사는 출시 당시 여러 나라에서 문제가 됐다. 사진: Valve

발단은 ESRB였다. 북미 게임 등급을 매기는 심의 기구다.

당시 ESRB는 이 트레일러의 묘사가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판단해 정식 공개를 허용하지 않았다.

밸브 앞에는 선택지가 두 개 있었다. 심의 기준에 맞게 다시 편집하거나, 그냥 묻어 두거나.

밸브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프로젝트에 관여한 누군가가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고, 그것이 마치 회사 몰래 새어 나간 것처럼 퍼졌다.

결과적으로 트레일러는 심의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에게 도달했다. 정식 공개가 아니었으니 절차를 밟을 이유도 없었다.

17년 만의 고백

영상: Chet Faliszek 유튜브 채널

팔리셱이 이제 와서 털어놓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이제는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다, 20년쯤 전 일이니까"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20년이 아니라 17년이다. '레프트 4 데드 2'는 2009년 11월에 나왔다. 본인의 어림셈으로 보인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밸브는 여러 방면에서 싸우고 있었다. ESRB뿐 아니라 호주와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심의 기관과 폭력·욕설 표현을 두고 부딪쳤다.

회사 법무팀이 작가들을 붙잡고 관리해야 했을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게임은 북미에서 성인(M) 등급으로 출시됐고, 밸브의 대표적인 멀티플레이 게임 중 하나로 남았다.

같은 해에 4만 명이 불매를 선언했다

레프트 4 데드 2의 생존자가 옥수수밭을 헤치며 나아가는 장면
▲ 전작 출시 7개월 만의 속편 발표는 큰 반발을 불렀다. 사진: Valve

심의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다. 이용자 쪽에서도 거센 반발이 있었다.

발단은 발표 시점이었다. 2009년 E3에서 속편이 공개됐는데, 전작이 나온 지 겨우 7개월 뒤였다.

'L4D2 Boycott'이라는 스팀 그룹에 4만 명 넘게 모였다.

요구는 분명했다. 밸브가 약속했던 전작의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를 지키라는 것, 그리고 별도 정가 속편을 낼 만큼 새로운 내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커뮤니티가 둘로 쪼개진다는 우려도 컸다.

밸브의 대응이 독특했다. 불매 운동 주도자들을 벨뷰 본사로 초청해 게임을 직접 해 보게 했다.

게이브 뉴웰과 에릭 존슨이 나서 모드 제작 도구 공개, 커뮤니티 매치메이킹, 전작 추가 콘텐츠를 약속했고, 두 게임 이용자를 잇는 방안도 논의했다.

그해 10월, 주도자들은 스스로 그룹을 해산했다.

트레일러를 몰래 흘린 것도, 불매 주도자를 본사로 부른 것도 같은 시기의 일이다. 당시 밸브가 이 게임을 어떻게든 세상에 내보내려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보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 일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유출'이라는 형식 자체다.

당시에도 지금도 유출은 강력한 홍보 효과를 낸다. 공식 발표보다 화제성이 크고, 이용자가 스스로 퍼 나른다.

그것이 회사가 의도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번 고백은 게임 업계의 유출 상당수가 연출일 수 있다는 오래된 의심에 사례 하나를 보탠 셈이다.

다만 지금이라면 같은 방식이 통하기 어렵다. 플랫폼과 심의 기관의 추적 수단이 훨씬 정교해졌고, 발각됐을 때의 제재도 무겁다.

17년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가벼운 뒷이야기로 읽히지만, 심의와 홍보 사이에서 개발사가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핵심 정리
사건: 2009년 '레프트 4 데드 2' 시네마틱 트레일러 유출
진상: 밸브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 — ESRB가 정식 공개를 막았기 때문
증언: 프로젝트 리드 쳇 팔리셱
배경: ESRB 외에 호주·독일 등과도 표현 수위를 두고 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