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안에서 파는 '다이아몬드', '코인', '포인트'는 결국 얼마짜리일까. EU 회원국 소비자당국 네트워크가 이 질문을 게임사에 정면으로 던졌다. 소비자보호협력(CPC) 네트워크는 9월 30일 라이엇게임즈, 유비소프트, 모장, 슈퍼셀 등 9개 회사의 인게임 화폐 판매 방식에 대한 EU 차원의 공동 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계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올해 초 시작된 별도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매체 코타쿠가 10월 11일 이 소식을 다루면서 라이엇·유비소프트·액티비전이 헤드라인에 올랐지만, 발표 자체는 그보다 열흘 이상 앞선 9월 30일이다. 아직 위반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당국이 회사별 대화를 연 단계이고, 근거가 되는 '핵심 원칙'도 구속력이 없는 지침이다.

9월 30일 무슨 발표가 있었나

밤에 프랑스 국기 색으로 조명된 브뤼셀 베를레몽 청사의 곡면 외벽
▲ 브뤼셀 EU 집행위원회 베를레몽 청사의 야간 외관(2016년 촬영, 이번 조치와 직접 관련된 장면은 아님).

발표 주체는 소비자보호협력(CPC) 네트워크다.

EU 회원국 소비자당국이 모인 협의체이고, 집행위원회가 조율을 맡는다.

집행위는 9월 30일 보도자료에서 아홉 개 게임사를 상대로 EU 차원의 코디네이티드 액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네트워크는 같은 날 '비디오게임 소비자 보호 강화에 관한 공동 성명'도 채택했다.

성명은 이번 조치를 업계와의 대화가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한 뒤 나온 후속 수순으로 설명한다.

집행위는 2025년 6월과 9월 두 차례 워크숍을 열어 업계 단체와 핵심 원칙 적용 문제를 논의했다고 적었다.

그럼에도 많은 게임사가 공개 지침과 장기간의 협의에도 게임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은 징후가 있다는 것이 네트워크의 판단이다.

네덜란드 소비자시장청(ACM)은 업계가 내놓은 제안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공식 조사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마르틴 리더보스 ACM 이사는 "게임 속 화폐를 쓰면 현실의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사가 개인에게 예상치 못한 비용을 안기는 기만적 수법을 쓸 수 없다고도 밝혔다.

미카엘 맥그라스 EU 소비자 담당 집행위원은 보도자료에서 "유럽인의 약 절반이 비디오게임을 즐긴다"며 "게임은 공정해야 하고,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각국 당국이 집행위의 지원을 받아 규칙이 집행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상은 9개 사 9개 게임, 액티비전은 별도 트랙

'헌트: 쇼다운 1896'에서 샷건을 든 사냥꾼 둘이 좁은 통로 끝의 괴물과 마주한 장면
▲ 조사 대상 목록에 오른 '헌트: 쇼다운 1896'의 게임 화면. 개발사는 크라이텍이다.
핏빛 달이 뜬 늪지 마을에서 사냥꾼이 서 있는 장면
▲ 같은 게임의 다른 장면. 이번 조치는 게임 내용이 아니라 화폐 판매 방식을 다룬다.
파란 하늘 아래 로스앤젤레스 라이엇게임즈 본사 건물과 빨간 간판
▲ 조사 대상 목록의 '발로란트'를 만든 라이엇게임즈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사. 이번 조치 대상 법인은 라이엇게임즈 리미티드다(원본 4:3 사진을 16:9로 잘라 사용).

영상: VALORANT 유튜브 채널

집행위 보도자료와 코디네이티드 액션 페이지에 오른 회사는 아홉 곳이다.

크라이텍, 이노게임스, 킹(King), 모장, 플라리움 유럽, PLR 월드와이드 세일즈,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유비소프트 EMEA다.

이름이 공개된 게임은 9종이다.

헌트: 쇼다운 1896, 포지 오브 엠파이어, 캔디 크러시 사가, 마인크래프트, 메크 아레나, 가드니스케이프, 발로란트, 클래시 오브 클랜, 포 아너다.

집행위 페이지는 회사와 게임을 짝지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공동 성명 각주에는 짝이 나온다.

크라이텍은 헌트: 쇼다운 1896, 이노게임스는 포지 오브 엠파이어, 킹은 캔디 크러시 사가, 모장은 마인크래프트다.

플라리움 유럽은 메크 아레나, PLR 월드와이드 세일즈는 가드니스케이프, 라이엇게임즈는 발로란트다.

슈퍼셀은 클래시 오브 클랜, 유비소프트 EMEA는 포 아너가 대상이다.

성명은 이 게임들이 도달 범위가 넓고 여러 기기에서 즐길 수 있으며 연령 등급이 다양해, 관행의 영향이 커진다는 이유로 대규모 시장 점검에서 뽑혔다고 설명했다.

코타쿠는 아홉 곳 가운데 한 곳을 '플라리움과 플레이릭스'로 적었지만, 집행위 문서에 플레이릭스라는 이름은 없고 해당 칸은 PLR 월드와이드 세일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이 아홉 곳에 들어 있지 않다.

집행위 보도자료는 이를 '액티비전 블리자드 UK 리미티드'와의 병행 조치로 따로 적었다.

대상 게임은 콜 오브 듀티 모바일과 디아블로 이모탈이다.

공동 성명은 이 조치까지 합쳐 '11건의 코디네이티드 액션'이라고 쓰면서 회사 열 곳을 나열했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액티비전까지 합쳐 10개 회사로 묶어 보도했다.

당국이 문제 삼은 것 — 코인이 얼마짜리인지 안 보인다

'포 아너'에서 중세 기사와 바이킹 병사들이 폐허 앞에서 난전을 벌이는 장면
▲ 조사 대상 게임 중 하나인 '포 아너'의 멀티플레이 화면. 개발·배급은 유비소프트다.
'포 아너'에서 성 내부 통로의 전투 장면
▲ 같은 게임의 거점 점령전 장면.
용암 폭포와 불꽃이 보이는 마인크래프트 네더 지형의 어두운 동굴
▲ 조사 대상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의 네더 지역 화면(원본 1920x960을 16:9로 잘라 사용). 이번 조치는 게임 내용이 아니라 화폐 판매 방식을 다룬다.

영상: Ubisoft 유튜브 채널

네덜란드 ACM이 설명한 핵심 문제는 가격 표시다.

게임 안 가격이 유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나 코인 같은 가상 단위로 적혀 있어 실제 지불액이 눈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화폐가 묶음 상품으로 팔리는데 아이템 가격과 딱 맞지 않아, 남는 잔액이 추가 구매를 부른다는 점도 짚었다.

코타쿠는 3,000단위 묶음을 사도 2,999단위짜리 아이템을 사고 나면 1단위가 남는 식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 밖에 ACM은 다크 패턴, 아이들을 직접 겨냥한 구매 권유, 도박 요소가 있는 루트박스를 문제로 꼽았다.

ACM은 아이들이 이런 관행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집행위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조치가 확인하려는 원칙 일곱 가지를 열거했다.

실제 돈 기준의 명확한 가격 표시가 첫째다.

여러 화폐나 환전 단계로 실제 가격을 가리지 말 것, 진행을 위해 과도한 화폐 구매를 강요하지 말 것이 뒤를 잇는다.

구매 전에 알기 쉬운 정보를 줄 것, 미사용 가상화폐를 포함해 14일 안에 계약을 철회할 권리를 알릴 것도 들어 있다.

약관은 공정하고 명확해야 하며, 아동 같은 취약한 이용자에게 적절한 안전장치를 둬야 한다는 항목이 마지막이다.

공동 성명은 루트박스 같은 변동 보상 시스템, 가짜 카운트다운 타이머와 근거 없는 희소성 문구도 언급하며 특히 아이들에게 열린 경우를 주의 깊게 본다고 밝혔다.

CPC 네트워크는 각 회사와 대화를 시작했고,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회원국 당국의 집행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집행위 페이지가 이번 조치를 두고 쓴 표현은 EU 소비자법을 위반할 수 있는 상거래 관행이 '의심된다'는 수준이다.

공개 자료에서는 회신 기한이나 과징금 규모를 찾지 못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 이탈리아 경쟁시장청이 앞장섰다

액티비전 쪽은 이탈리아 AGCM이 주도한다.

포켓게이머 보도에 따르면 AGCM은 두 게임이 무료로 홍보되지만 게임 내 구매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들여다본다.

가상화폐와 묶음 판매 탓에 실제 지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특히 미성년자 문제도 조사 범위다.

보상 알림이나 기간 한정 아이템으로 오래 플레이하고 더 쓰게 만드는 인터페이스 설계도 살핀다.

보호자 통제 기본값이 낮은 보호 수준인지, 계정 생성 때 개인정보 처리 동의를 어떻게 받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집행위 보도자료는 병행 조치에서 가상화폐 판매 방식, 개인정보 수집, 중독적 설계, 보호자 통제 기본값, 아동 대상 직접 마케팅, 계약 전 정보 표시, 게임 계정 차단을 살핀다고 적었다.

AGCM은 10월 8일 발표에서 EU 소비자보호 규정을 어긴 광범위한 위반이 있었는지, 최소 세 개 회원국 소비자에게 영향을 줬는지 본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와 별개로 이탈리아의 자체 조사가 12월에 시작됐다고 전했지만, 기사에 연도는 적히지 않았다.

포켓게이머는 1월 조사 개시를 보도했다.

개시 시점은 두 보도가 엇갈려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로이터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입장을 낸 사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조사 역시 최종 판단이 나온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사안이다.

시점내용
2026년 1월 이탈리아 경쟁·시장당국(AGCM)이 디아블로 이모탈과 콜 오브 듀티 모바일 관련 조사 2건을 시작. 포켓게이머 보도는 1월 19일자. 집행위 페이지도 이 조치가 2026년 초 시작됐다고 적음
2026년 9월 30일 CPC 네트워크 공동 성명 채택. 집행위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UK 건을 아홉 개사와 별도로 병행 조치로 발표
2026년 10월 8일 AGCM, 마이크로소프트 계열 게임사들을 상대로 한 가상화폐 관련 EU 공조 조사를 발표(로이터 보도). 액티비전 블리자드만 명시하고 나머지 계열사는 비공개. 노르웨이·덴마크 당국이 함께함

▲ 액티비전 블리자드 관련 주요 일정(출처: 집행위 페이지, 로이터·포켓게이머 보도). 조사 개시 시점이 12월이라는 보도와 1월이라는 보도가 엇갈린다.

앞선 사례 — 2025년 스타 스테이블과 '핵심 원칙'

이번 조치가 처음은 아니다.

CPC 네트워크는 2025년 3월 21일 스웨덴 게임사 스타 스테이블 엔터테인먼트의 '스타 스테이블 온라인'에 대한 공동 입장을 공개했다.

스웨덴 소비자협회의 신고가 계기였고 스웨덴 소비자청과 노르웨이 소비자청이 이끌었다.

네트워크는 아이들에게 화폐나 아이템 구매를 직접 권유하는 광고, 시간 제한으로 압박하는 구매 유도를 문제로 봤다.

아이에게 맞지 않는 불분명한 안내, 협찬 표시가 분명하지 않은 인플루언서 홍보도 지적했다.

회사에는 한 달 안에 서면 답변과 개선 약속을 내라고 했다.

같은 날 네트워크는 인게임 화폐에 관한 '핵심 원칙(Key Principles)'도 내놨다.

네덜란드 ACM과 노르웨이 소비자청이 집행위의 도움을 받아 이끌었다.

원칙의 큰 줄기는 실제 돈으로 환산한 가격 표시, 비용을 가리거나 화폐 구매를 강요하는 관행 금지다.

계약 전 정보와 14일 철회권 보장, 아동 등 취약 소비자 배려도 포함된다.

집행위는 이번 보도자료에서 2025년 업계와 연 대화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해 시장 점검과 조사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ACM은 별도로 게임, 특히 미성년자가 하는 게임에서 루트박스와 가상화폐를 금지하라고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EU의 '디지털 공정성법(Digital Fairness Act)' 준비 과정에 낸 의견이다.

법적 지위와 업계 반응 — '구속력 없는 지침'을 둘러싼 공방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이 있다.

핵심 원칙은 법이 아니라 기존 EU 소비자법을 어떻게 읽을지 정리한 지침이다.

원칙 문서는 이를 따랐다고 해서 법 준수가 보장되지 않고,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위법인 것도 아니라는 취지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원문이 아니라 법률사무소 해설 등 2차 자료로 확인했다.

게임 업계 단체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모바일게이머닷비즈 보도에 따르면 비디오게임 유럽(Video Games Europe)과 유럽게임개발자연맹(EGDF)은 9월 30일 반박 입장을 냈다.

두 단체는 인게임 화폐를 '가치의 디지털 표현'으로 보는 규제 당국의 틀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틀이 암호화폐와 비슷하다는 취지로 문제 삼았고, 유럽사법재판소의 룬스케이프 화폐 관련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봄부터 그 법적 근거를 물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다.

업계 단체가 내놓은 자율 공약 가운데 매체가 확인한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실제 돈 기준의 가격 표시 개선이 하나다.

철회권을 포기한 경우에도 전혀 쓰지 않은 묶음 상품은 48시간 안에 환불해 준다는 내용이 있다.

구매한 콘텐츠를 없애기 최소 30일 전에 알리고, 부모 통제와 미성년자 무단 결제 보상 같은 아동 보호 조치도 약속했다.

매체에 따르면 공약은 여섯 가지인데 이 가운데 네 가지만 기사에 구체적으로 적혔다.

업계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이를 이행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 반박은 모바일게이머닷비즈 한 곳의 보도를 따른 것이다.

개별 게임사의 공식 입장은 확인하지 못했다.

코타쿠는 이번 10곳에 포함되지 않은 에픽게임즈가 이달부터 V-버크를 정확한 금액 단위로 쓸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플레이스테이션 제외). 이는 코타쿠 한 곳의 보도다.

이 글은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은 각국 당국의 몫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 표시의 대상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2024년 3월 22일부터 게임사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1월 21일 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최대 3배를 배상하게 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개정법은 2025년 8월 1일 시행됐다.

이 제도의 내용은 확률형 아이템법 시행 1년 점검 기사에 정리돼 있다.

넥슨 '큐브' 과징금 소송은 확률형 아이템법의 시험대로 불린다.

EU의 이번 조치는 상자 속 확률보다 '화폐가 현실의 돈으로 얼마인가'를 보여달라는 쪽에 가깝다.

ACM은 로트박스의 도박적 요소도 우려 사항으로 언급했지만, 집행위가 공개한 요구의 중심은 가격 표시와 아동 보호다.

별도로 EU 집행위가 9월 17일 내놓은 청소년 온라인 보호 규정안도 있다. 이 안에서 게임에 걸리는 조항은 EU KIDS Act 기사에서 다뤘다.

두 제도는 규제 대상도 법적 단계도 다르다.